백마강에는 낙화암 -53
상태바
백마강에는 낙화암 -53
  • 한지윤
  • 승인 2020.08.05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동안 어리벙벙해 있던 도미였지만 평소부터 아내를 굳게 믿고 살아온 도미였는지라 임금 앞에서도 이렇게 말할 수 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어느덧 도미의 이마와 얼굴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임금이 무슨 뜻으로 자기의 아내에 대해서 저렇게 묻고 있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행실이 착하다고 상이라도 내리기라도 할 것인가, 아니면 무슨 다른 뜻이라도 있단 말인가?
도미가 이런 생각으로 가득할 때에, 임금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참말 그럴까?”
이렇게 말하더니 임금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그대는 계집들을 얼마나 다루어 보았는가?”
“소인은 여지껏 소인의 아내밖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모를 수 밖에…… 이 세상 계집들의 마음이란 갈대와도 같은 거야. 정조니 부덕이니 순결이니 하고 떠드는 계집들이 있기는 하지만 다 헛소리야. 무릇 계집들의 덕행은 비록 정절을 위주로 한다지만, 만약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 있을 때 교묘한 말로 꾀면 능히 그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 계집들은 드물 것이야. 달콤하게 꼬이면 안 넘어가는 계집은 없어. 없다구.”
임금의 억양이 순간 강해졌다.
이를 이상하게는 생각했지만 임금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도미는 두려움과 궁금함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작은 목소리로 공손하게 말했다.
“황공하오이다. 글쎄 다른 여자들의 마음은 가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만 소인의 계집만은 비롯 죽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마음은 없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습니다.”
도미는 끝까지 이렇게 대답했다.

임금은 도미가 가당찮다는 듯 지긋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제 계집을 무던히도 믿는구먼. 그렇다면 어디 과인이 한번 시험해 볼까?”
임금의 말에 도미는 또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임금의 말에 아무리 놀랜 도미라고 하지만 감히 임금 앞에서 아내에게 욕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글쎄, 시험해 보셔도 소용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아니야, 꼭 시험해 봐야겠어. 과인의 말이 옳은지 그대의 말이 옳은지는 시험해 보지 않고서는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도미는 순간 응큼한 임금의 올가미에 걸려 든 것을 그제야 급히 뉘우쳤으나 이제는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임금은 도미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도미 자네를 이곳 왕궁에서 일하도록 해주겠네. 어떤가?”
도미는 말이 없었다.
한동안 망설이다가 임금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도미의 마음을 돌린다는 것이 불가능임을 알고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신하를 시켜 도미를 다른 방에 가두고 자물쇠를 걸어 잠글 것을 명령하였다.
그날 저녁이었다.
개루왕은 한 가까운 신하를 부르더니 오늘 저녁 임금의 옷으로 꾸며입고 왕으로 가장하여 도미의 아내를 시험해 보라고 명령하였다.
그 신하는 그날 저녁, 임금의 분부대로 하였다.
한편 도미의 아내는 온종일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소식을 궁금해 하면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으나 날이 어둡고 밤이 되도록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혹시 남편이 잘못되지 않았을까? 어찌된 영문일까? 혹시, 혹시……’
도미의 아내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불안해 했다.

자꾸만 불길한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 그런데 그 순간 밖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만 나도 남편이 돌아오는 줄 알고 문을 열어보곤 했다.
몇 번을 열어보고 몇 번을 밖에 나와 집 앞의 길을 쳐다보았지만 매번 허탕이었다. 
밤이 자꾸 깊어지자 도미의 아내는 더욱 더 불안해졌다.
‘정말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깊은 생각에 잠겨 남편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가요?”
하는 소리가 길게 울려 오더니 뜨락에 사인교가 들어섰다. 임금의 행차였다. 먼발치에서 고개만 숙이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나는 정경이었다.
순간 도미의 아내의 얼굴을 확 달아올랐고 땀은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큰일이구나. 그런데 그이는 어찌되었는지? 이젠 나까지 잡으러 왔구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도미의 아내는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가 땅바닥에 엎드렸다.
“이 집이 도미의 집인가? 그리고 그대는 도미의 아내인가?”
임금이 짐짓 위엄을 차리고 물었다.
“그러하옵니다. 대왕께서 이렇게 누추한 집에 행차하시니 황공하옵기 그지 없습니다. 어서……”
“으음……”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