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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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54
  • 홍주일보
  • 승인 2020.08.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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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옵니다. 대왕께서 이렇게 누추한 집에 행차하시니 황공하옵기 그지 없습니다. 어서……”
“으음……”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임금이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인이 그대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오늘 특별히 여기까지 왔거늘 어서 방으로 안내하도록 하거라?”
“너무 누추해서 어떡하오리까?”
“괜찮으니라. 어서 모시거라.”
도미의 아내는 하는 수 없이 임금을 방으로 안내하였다.
정말 모를 일이다. 돌아와야 할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이렇게 보잘 것 없이 사는 백성의 누추한 집에 임금의 행차라니……. 그런데 남편은 어찌된 일일까?
도미의 아내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는 도미의 아내를 향해 말했다.
“얼굴을 들거라?”
“네, 네에……”
“아, 참으로 아름다운 미인이로구먼!”
“황공하오이다.”
“과인이 여기까지 몸소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대가 천하일색이라는 말을 듣고 도미에게 높은 벼슬을 내리고 오늘부터 그대를 왕비로 삼으려 하느니라. 그대 지금부터 너의 몸은 곧 나의 것이니라. 그래, 이 밤으로 우리 인연을 맺으려 하느니라. 알겠느냐?”

도미의 아내는 임금의 검은 심보를 불보는 듯 하였다. 도미는 높은 벼슬이 아니라 임금 자리를 내어준다고 하여도 아내를 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그의 아내가 잘 알고 있는 터였다. 분명히 임금이 도미의 아내를 탐내어 몸을 가지려 하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기왕에 저쪽에서 속이고 드니 이쪽에서도 속이는 수밖에 별 도리가……’
도미의 아내는 순간적으로 좋은 꾀를 생각해내게 되었다.
“나라의 임금은 망령된 말씀이 없는 법이므로 어찌 감히 보잘것없는 백성의 몸으로 대왕의 말씀을 거역하오리까? 본부대로 따르오리다.”
“그러면 그렇지, 어찌 하잘것없는 백성의 몸으로 임금의 말을 거역한단 말인가. 그럼 어서 금침을 펴도록 하거라.”
“네, 분부대로 하오리다.”
도미의 아내는 얼른 일어나 방에 이부자리를 펴 놓고 말했다.
“대왕, 어찌 다른 분도 아니신 나라님을 모시는데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치장도 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요. 잠깐만 기다려 주옵소서. 얼른 새 옷으로 갈아입고 간단하게나마 치장도 좀 하고 돌아오겠아니다.”
도미의 아내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듣자 임금은 쾌히 승낙하였다.
“그럼 얼른 치장도 좀 하고 새 옷으로 말끔히 차려입고 들어오너라.”
‘여자는 여자야. 여자는 할 수 없어’
임금은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임금의 허락을 받은 도미의 아내는 얼른 방에서 나가 계월이라고 하는 몸종을 조용히 불렀다.
“얘, 계월아! 너 어서 이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몸치장을 단정히 하고 오늘밤 임금님을 잘 모시도록 하여라. 어서!”
“네에, 알았어요!”
언젠가 안주인의 덕분으로 구차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적이 있는 계월이었던지라 안주인의 분부라면 죽으라해도 선뜻 나서야 될 입장이었던 사람이다.
본디 얼굴이 예쁜 계월이는 안주인과 꼭 같은 모양으로 단장을 하면 주위사람들도 꼬박 속곤 했었다. 이런 계월이었던지라 안성맞춤이었다.
계월이는 안주인이 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몸을 단장하고는 곧바로 임금의 방으로 들어가 갸웃하고 인사를 한 후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임금은 점잖은 목소리로,
“부끄러워 할 게 무언가? 어서 이리로 가까이 오너라!”
임금의 계월의 손을 끌어당기며 촛불을 껐다.
계월이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임금이 하라는 대로, 때로는 임금이 하는 대로 한 몸을 그대로 맡겨버렸다. 계월이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듣자 임금은 갑자기 큰 목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과인이 임금의 몸으로 그대와 아름다운 인연을 맺는데 어찌 훌륭한 궁궐을 두고 이렇게 초라한 백성의 집에서 그대 아름다운 몸매를 발가벗긴 채 인연을 맺을 수 있단 말이냐?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은 그저 그대의 마음을 떠보는 것으로 족하니 후일 내가 다시 사람을 보내 좋은 옷과 치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낼테니 몸단장을 잘하고 궁궐로 돌아오거라. 알겠느냐?”
“네, 알았습니다요.”
계월이는 수줍은 듯 가느다란 목소리로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그 가짜 임금은 그 여자의 속바지를 집어 들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더니 나졸들을 향해 궁궐로 돌아가자고 재촉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임금 노릇을 한 그 사람은 임금이 아니라 임금의 명령을 받고 도미의 아내를 시험하러 온 가짜 임금이었다.
그의 지금까지 행동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개루왕의 명령에 따라 그의 신임이 두터운 신하 한 사람이 한 짓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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