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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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들의 언어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1.21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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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이다. 소들은 상황에 따라서 서로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특별한 울음소리를 가지고 있다. 인간도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자 할 때는 언어와 몸짓을 사용하고,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자기만의 방식을 동원해 의사표현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주변에는 축사(畜舍)가 있다. 가끔 송아지의 애달픈 울음소리로 잠을 설칠 때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송아지의 젖을 떼기 위해 어미 소와 떨어뜨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어미 소와 이별해야 하는 송아지처럼 아이도 엄마와 헤어질 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H는 출산 후 한 달 만에 엄마와 6시간씩 매일매일 떨어져 있었다. 만 3세 때는 5개월간 외할머니 댁에서 생활했는데 음식을 먹기만 하면 토하고, 계속 울다 지쳐서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으며, 어린이집에 다닐 때도 엄마의 부재를 익숙해 하지 않아 엄마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엄마 바라기 상황은 계속돼 엄마가 있는 학원 문을 발로 쿵쿵 차버리거나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른 후 집으로 돌아가는 등 엄마로 채움 받아야 할 마음의 공간을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어 엇나가는 행동으로 자신의 욕구를 표출했다. 집에서는 여동생의 장난감을 숨겨버리나 꺼내기 어려운 곳에 던져서 엄마에게 잦은 꾸중을 들었고, 엄마와의 관계는 더욱 힘들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학교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자 엄마는 고민 끝에 H에게 자전거를 사주면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공부만 하는 시스템의 기숙학교로 보내셨다. 주말에만 제공되는 스마트폰이 유일한 놀잇감이었고, 게임으로 재미를 찾는 시간들이었다. 기숙학교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H와 엄마의 갈등은 더 깊어져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몰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신청하게 됐다.

존 볼비(John Bowlby, 1907-1990)의 애착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애착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양육 초기 중요한 대상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애착관계는 이후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했다. 특히 아이가 위협 상황에 처하면 세 가지 행동 유형을 보이는데, 첫 번째는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대상으로 실제 양육자와 무관하게 엄마를 가장 선호한다. 두 번째는 낯선 상황에서 애착 대상이 안전 기지(secure base)가 되어준다면 아이는 탐험을 할 수 있지만, 애착 대상이 부재하게 되면 탐험을 중단한다. 세 번째는 위험한 상황에서 안전한 피난처(safe haven)로서 애착 대상에게 달려가는데 이때 아이는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더 강하고 현명한 사람과 함께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H가 엄마와 상담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마스크를 썼기 때문에 전체적인 인상은 볼 수 없었지만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의자에 기대고 앉은 몸짓은 상담을 진행할 뜻이 없어 보였다. 나는 엄마와 분리시켜서 H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단답형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마음을 꺼내 보였고, 자주 눈물을 훔쳤다. H가 지금까지 엄마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밖에서 오래 놀지 마라, 게임하지 마라는 것과 학원가라, 공부하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존중하기 보다는 결정한 후 통보했으며, 그때마다 자신은 조건부로 원하는 것을 받고 억지로 그 약속을 수행했다고 했다. 전학을 할 때도,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을 때도, 캠프에 가는 것도 모두 엄마의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H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대상이 없었다. 출생 초기에 문제가 있었다면 두 번째 기회, 곧 상담자를 통해 아이가 안전하게 세상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존 볼비의 말처럼, 나는 H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려고 노력했고, H도 상담을 통해 마음을 터놓을 수 있어서 시원하다고 했다. 이렇게 H와의 상담을 시작으로 나는 어머니에게도 교육·상담을 진행했다. 어머니는 표면에 드러나는 H의 폭력성과 스마트폰 사용 조절에 대한 기대만 있었고, 그런 행동을 유발하는 내면의 소리에는 여전히 외면하고 있었다. 오직 문제를 일으켰을 때에만 관심을 내비치는 양육태도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고, 상담 중에도 H의 문제점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기대감만 표현했다. 하지만 엄마가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이의 변화는 매우 어렵다. 곧, 아이의 변화를 위해서는 상담자 역할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양육태도와 소통 방법이 개선돼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수반될 때, 아이의 스마트폰 사용 조절이나 폭력적인 행동은 조금씩 개선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성장하는 자녀들과 함께 성장하는 부모가 돼 자녀들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돼줄 수 있는 성숙한 부모가 되기를 소망한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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