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항쟁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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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항쟁을 기리며
  • 서유정(홍성여고 2) 학생기자
  • 승인 2012.04.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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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제주 4·3사건이다. 세계적인 냉전 상황과 한반도 분단체제의 고착화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국가 공권력에 의해 집단희생으로 귀결되었다 진상규명 운동의 과정으로 세상에 드러난 우리의 역사다.

제주 4·3사건은 복잡하고 불안했던 그 당시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무장봉기와 5·10 총선거에서 제주도 2개의 선거구민이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처리 되는 등의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계엄령이 내려져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는 등 7년 7개월간 지속된 사건이었던 만큼 그 피해가 컸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아픔이 곳곳에 있다. 섬나라인 제주도조차 전쟁을 피해가지는 못한 것처럼, 전쟁을 피하기란 불가능하며 육지에 있는 우리의 고장 홍성 역시 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 홍주가 홍성으로 바뀌게 된 것은 공주와 발음이 비슷해서라는 말이 있으나, 사실 어느 지역보다 항일의식이 높았던 지역의 특성을 희석시키고자 저지른 일제의 만행이다.

이제는 역사가 되어버린 과거에 홍성은 홍주 의사총에 의병들을 모시고 만해 한용운과 백야 김좌진 등의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만들어 그들을 기리고 있다. 제주도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 4·3평화공원을 비롯하여 전쟁역사평화박물관 등 많은 역사박물관들이 있다. 그 어느 곳보다 전쟁의 아픔이 많았기에 평화와 관련된 장소 역시 많고 아직도 그때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전쟁역사평화박물관

 

 


5·18민주화 항쟁이 공휴일은 아니지만 달력에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4·3항쟁은 달력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제주도의 민주화 운동이 은폐되다 진상규명 운동으로 4·3 특별위원회 설치, 2000년 1월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특별법 통과,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달력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큰 사건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제주 전쟁역사평화박물관에서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일본에게 매각되려 한다는 소식이었는데 이영근 관장님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혼자 운영하다 재정이 악화되어 이러한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다행이 일본에게 매각중단을 하시고 국내에게만 매각하겠다고 하셨는데 현재까지도 매각하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니 우리의 무관심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었다.

‘자유와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많은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자유와 평화가 유지가 되는 것이고 군사비가 나가는 것 역시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이다. 얼마 전 천안함 2주년도 그렇고 다시 한번 역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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