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희망으로 극복, 그것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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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희망으로 극복, 그것이 인생”
  • 윤신영 기자
  • 승인 2021.03.13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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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색의 활짝 핀 스토크 속 안대윤 대생화훼농원 대표와 부인 장희수 씨.

46년간 도매업… 72세에 화훼농원 직영 시작해
800평 하우스 9동·노지 2000평농원 운영한다

 

지난해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펜데믹 혼란 속으로 빠트리며 대부분의 산업에 큰 피해를 입혔다. 그 후 우리 사회는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비대면으로 행사가 치러지는 것이다. 최근 입학시즌을 맞아 대호황을 누려야 할 화훼농가들이 비대면 입학식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그 와중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무려 1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화훼 농원을 운영하는 이가 있다. 은하면 대생화훼농원 안대윤 대표(79)가 그 주인공이다.

안 대표의 첫 인상은 머리가 하얗게 새고 무척 인상이 좋은 할아버지였다.

본래 서울에서 지냈다는 안 대표는 19살이 되면서 시작한 화훼도매업을 46년간 이어왔다. 평생 일해 온 도매업을 그만두게 된 계기는 그가 65세가 되면서 사업에 체력이 부치던 시기, 때마침 일자리가 필요했던 큰 아들의 일거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큰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쉬며 지내던 중에 농업인들이 은하면에서 화훼업을 새로 시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자금을 투자하게 됐다.

활짝 핀 오레지 꽃.

지난 2005년 대생화훼농원에 투자한 안 대표에게 두 가지 큰 시련이 생겼다. 운영을 맡았던 농업인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운영으로 인해 큰 손해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 2012년까지 7년여 간 적자가 자그마치 수억 원에 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011년엔 사기까지 당했다. 화훼농업의 특성상 비닐하우스의 온도 유지가 중요한데, 겨울철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난방 시설은 필수였다. 그래서 안 대표가 난방 시설을 알아보다 최신 기술 보일러 업자에게 그만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 일로 안 대표는 화훼 농원도 빼앗길 위기에 처했었지만 힘들게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런 일들을 겪고 화훼농원을 직접 운영하게 됐어요. 본래 농원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까지 처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버려질 땅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제겐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는 희망의 땅이었기 때문에 온갖 방법으로 겨우 지켜냈습니다.”

지난 2012년 5월, 72세의 안 대표는 농원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돈을 잃고 큰 위기를 겪게 된 계기였던 농원을 정리해버릴 수도 있었지만 안 대표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화훼 도매를 하며 어깨너머로 농사를 보기는 했지만 직접 운영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젠 가진 돈도 없었고 뭔가를 다시 이뤄낼 수 있는 방법은 화훼 농원뿐이었어요. 그 나이에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기가 싫었습니다.” 안 대표가 농원 직영을 선택한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안 대표는 “처음 홍성에 내려와서 시설을 확인하는데 농원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널려있었다”며 “20평짜리 냉장고에서는 꽃 구근들이 썩고 있었고, 또 다른 가정용 냉장고에서는 쓰지 못할 오래된 꽃씨들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 대표는 그 해 여름에 매일 4시 반에 일어나 1시간 정도 운동을 한 후, 5시 반경에 제초작업을 시작해 2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침밥을 먹었다. 그러다 혼자서는 할 수 없겠다고 깨달은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같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께 열심히 달리다가 10월이 됐다.

“본래 매년 10월 말이 되면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해 대금을 투자자인 제가 따로 지급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 해 처음으로 농원에서 직원들 월급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안 대표는 직영 첫 해에 경영 정상화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매출을 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어떤 꽃이든 제철보다 10일 먼저 나오거나 제철 끝난 후에 10일 뒤에 나오면 더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비록 종자가 비싸더라도 재배 비용이 적게 들어서 오히려 원가가 줄어드는 경우도 발견했다. 또 한 광주리에 모든 계란을 담지 않듯이 한 가지 꽃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꽃을 심었다.

여러 운영 개선을 통해 지난 2012년 6억여 원이던 농원 매출은 2018년도엔 10억여 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렇게 같이 늘어난 수익으로는 틈틈이 시설 투자를 했다. 어느덧 800평짜리 9개 비닐하우스에 최신식 난방시설을 완비하고 노지 2000평을 운영한다.

안 대표는 코로나19로 힘든 현 상황을 설명했지만 이후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해엔 3억 원 미만으로 매출이 낮아졌어요. 하지만 그동안 농원을 운영하며 재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우에도 신경쓰다보니 지속적으로 성실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찾아와 일을 도와줬죠. 비록 지금은 많이 힘든 시기지만 코로나가 끝난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기반으로 다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자신이 있습니다.”

첫 인상은 인상 좋은 할아버지였지만,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의 나이를 잊고 열정 넘치는 한창 때 기업가로 바라보게 된다. 현재 나이 79세의 안대윤 대표. 젊은이들도 놀랄 그의 열정에 감탄이 절로난다. 곧 코로나 시대가 저물어 그의 농원에 대한 자부심처럼 화훼 산업이 다시 활기를 찾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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