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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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 홍주일보
  • 승인 2021.05.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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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그림그리기 〈8〉

할머니가 그림 그리는 곳에 손자가 따라왔습니다. 손자도 할머니와 함께 그림을 그렸습니다. 할머니보다 더 많은 그림을 쓱쓱 그렸습니다. 오리도 그리고 로봇도 그리고 핸드폰도 그렸습니다. 넝쿨에 달린 바나나와 꽃밭에 나비도 그렸습니다. 손자의 손놀림은 시원시원했고 생각은 끝도 없이 퍼져나갔습니다. 할머니는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열중해서 그려도 손자를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보다 못한 손자가 할머니에게 나비 한 마리를 그려주었고 할머니들이 다 모인 시간에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보내고 말았습니다. 할머니가 아쉬운 듯 말씀하셨습니다. ‘얘! 그걸 말하면 어떡하니!’   

할머니를 따라와 그림을 그리는 손자는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그림을 쓱쓱 잘도 그리는 손자의 스케치북을 넘겨보다가 발견한 그림이 바로 〈햄버거〉입니다. 그림 위에 그린 날짜와 이름 그림 제목이 쓰여 있습니다. 바탕색 없이 햄버거와 콜라병만 간결하게 그렸는데 매력이 있습니다. 대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기억해 빠르게 그렸습니다. 과감하게 생략한 부분도 있고 세밀하게 묘사한 부분도 있습니다. 콜라병 뚜껑, 햄버거 빵의 위아래, 양상추와 치즈 뭐 하나 색채가 같은 게 없습니다. 다르면서도 잘 어울리게 골라 쓴 색채 감각이 돋보입니다. 마치 기성 작가의 속도감 있는 스케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무리가 조금 덜 된 아쉬움도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생각이 안 나 못 그리겠다고 하십니다. 초등학교 1학년 손자와는 영 다릅니다. 어쩌면 늙는다는 것은 일상의 기억마저도 사라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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