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모든 시기 소중히 맞이하자
상태바
인생의 모든 시기 소중히 맞이하자
  • 최교성 세례자 요한 <홍주성지 전담 신부>
  • 승인 2022.03.17 08: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서 시편에 보면 ‘악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아무런 희망도 없고, 보람도 없고, 의미도 못 찾는다. 그리고 그에 반해서 의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희망에 차 있고, 충만하며, 영혼은 독수리 날개처럼 날쌔다.’라며 늘 감사한 삶을 살아가는 노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내 주변 신도들도 이런 고백을 한다. “나는 70살이 넘어 덤으로 산다고 생각됩니다. 옛사람들은 60살도 못 넘긴 데 비해 나는 혹처럼 덤으로 삽니다. 나이 들수록 감사를 노래합니다.” 인명재천이라고 했던가, 이승에 올 때도 갈 때도 하늘이 정하는 것 같다.

이 세상에 21세기에 태어나고 싶어서 손들고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 세상 망망대해에 던져진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실존주의 철학자 키엘케고르의 말과 같이 인간은 늘 죽음에 휩싸인 존재이다. 죽음을 향해있는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죽어가고 있다.

인생의 모든 시기는 다 의미가 있고 제각각 그 역할을 지닌다. 유년기를 잘못 보내면 평생을 고통 속에 살 수도 있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듯이, 유년기뿐만 아니라 청소년기 역시 잘 보내야 장년기 노년기를 잘 맞이한다는 뜻이다. 마치 구슬을 하나하나 잘 꿰어야 진주목걸이가 탄생 되듯이 말이다.

나의 체험담을 봐도 알 수 있는데 너무 어린 나이에 서울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부모님과 형제들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청와대에서 가장 가까운 그 당시 최고의 학군으로 국민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낯설고 두려운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의 도움과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에 출셋길에 눈이 먼 교육열은 나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순탄치 못하게 했다.

일종의 상처가 됐다. 옆구리가 시리게 만들었고, 그리 행복하지 못한 학창시절이었다. 부모님과 떨어진 그 자체가 어린아이에겐 힘겨운 싸움이었다. 칭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서울서도 상위권에 들었으니 말이다.

옆구리가 시린 것이 공허함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그 자리에 신앙심이 자라났다. 성당에 가면 고향에 온 기분이었고 마냥 행복했다. 사춘기에 하느님 사랑에 사로잡혀 중학교 2학년 때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경복고 1학년 때 ‘선배와의 대화’ 시간에 학교를 찾은 의사가 된 선배에게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다시 태어나면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선배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천주교 신부가 최고로 부럽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평소 내가 품었던 말로 답변을 이어갔다. “평생을 신을 섬기고, 진리를 전하고, 정의를 살아가는 사제가 되고 싶다. 너무나도 멋진 삶이 아닌가?” 

내 자신이 평소 품고 있는 것이 결코 망상이 아니라 어른들도 선망하는 좋은 몫이구나 하며 나의 성소를 확인받은 느낌이었다. 어릴 때 나 자신의 상처를 신은 이용하신 것이었다. 하여튼 성장 과정의 어느 한 부분들은 인생 전체와 연관이 있는 소중한 시기들이라는 것이다.

초등학생은 학업보다도 어른들은 조건 없는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이리라. 공부를 잘하든 말든 상관없이 그리고 조건 없이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존재감을 갖게 된다.

노년기 역시 대단히 중요한 최고로 중요한 시기이다. 나 역시 40살이 넘어서면서 은퇴 후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노년기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홀로서기 작업에 들어갔다. 모임도 대폭 줄이고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작업에 들어갔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신을 향유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혼자 있는 것이 자유스러워졌다. 인생은 결국 혼자다. 내가 가끔 써먹는 얘기가 있다. 젊은 시절 영화를 보기 위해 5~6명 친구들과 히히덕거리며 행복에 겨워 극장을 들어간다. 그리고 영화는 각자가 혼자 보는 것이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만 손잡고, 그 나머지는 각자가 보고 각자가 제각기 느끼는 것이다. 

인생도 이와 같은 경우가 많이 있다. 결국은 인생은 혼자이기 때문에 홀로서기를 잘하는 것이 좋다. 결국 무덤에 갈 땐 모두가 홀로 간다. 농담으로 우리 순례자들에게 말하곤 하는 말이 있다. 옆에 배우자들을 보시라. “나는 너 필요 없어!” 집에 가서 짝들에게 말하시라. “너 필요 없어!”라고 외치시라고….

홀로서기 한 사람들은 이제 필요에 의해서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다. 그러면 누가, 친구가 도움을 청할 때 아무 조건 없이 도와준다. 홀로서기가 제대로 될 때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독립체가 된다. 자유인이 되고 자신의 소신도 말한다. 홀로서기가 안되면 왕따를 당할까 또는 친구를 잃을까 전전긍긍해 자신의 감정 하나도 표출하지 못한다. 눈치를 보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은 경우 유아적인 정서, 즉 집착과 타인에게 기대는, 독립되지 못한 정서들이 많다. 정에 너무 얽매인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러다 보면 인간관계도 왜곡되고 진실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그걸 술로 풀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여튼 나이 들수록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정서적으로 타인에게 종속된 것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노년기는 인생을 완전하게 마치는 영원으로 준비하는 가장 소중한 단계이다. 나이 들수록 감사 감사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