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문제가 내 탓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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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문제가 내 탓이 되기까지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5.26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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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힘든 상황이 생기면 남 탓을 많이 한다. 자신의 삶이 힘든 것이 누군가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자신의 힘든 상황을 누군가의 탓으로 전가하고 싶어 한다. 

D씨는 8년 전 아내와 이혼 후 초등학교 4학년 아들 E군을 키우고 있다. 직장에서는 매일 300여 명이 먹는 음식을 요리하고, 집에 들어오면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어느 날 캄캄한 저녁이 됐지만 아들이 귀가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집에 들어 온 아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D씨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따라 들어가서 왜 늦게 들어왔는지를 묻자 거짓말을 했다. 잦은 거짓말을 하는 아들을 가만히 둘 수 없어서 발로 아들의 몸을 강하게 때렸다. 

E군은 학교 방과 후 합기도를 배우러 학원에 다닌다. 친구들은 공부 학원 등을 다니지만 공부에는 별 흥미가 없다. 학원을 마친 후 집에 오면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TV를 시청하시고, 할머니는 밥을 같이 먹은 후 방에 들어가 누우신다. 아버지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면 E군도 컴퓨터 앞에서 4~5시간 게임을 하다가 늦게 잠이 든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학교에 가다보니 지각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자 아버지가 상담을 신청했다.

본 기관에서는 상담을 5년 정도 경험한 F상담사를 배정했다. F상담사는 E군과 D씨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정한 후 가정으로 방문했고, 첫 회기 상담을 진행했다. D씨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E군의 스마트폰 과의존 현상과 거짓말 등이 매우 심각함을 토로했고, E군의 행동 변화를 기대했다. F상담사는 E군의 문제 행동 원인이 아버지 D씨에게 있음을 직면시키자 D씨는 F상담사의 태도를 지적하고 팽팽한 대립각이 형성되면서 상담을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심리치료사이자 해결중심치료의 창시자 드세이저(de Shazer, 1988)는 상담사와 내담자의 관계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첫 번째로 ‘방문형’은 학교나 법원, 가족에 의해서 오게 되는 비자발적 내담자(involuntary client) 유형이다. 이들은 문제에 대한 책임감이 약하고,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상담 후에도 치료자와 함께 문제를 공동으로 인식하거나 상담 목표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두 번째로 ‘불평형’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해결의 필요성도 알고 있지만, 그 문제가 자신에게 있지 않고 가족이나 배우0자, 자녀 등 타인에게 있다고 인식하면서 투덜대는 유형이다. 세 번째로 ‘고객형’은 구체적인 상담 목표와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유형으로, 자신이 문제해결의 주체임을 알고 있는 내담자를 가리킨다. 이런 내담자는 스스로 상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담 절차에 협조하며, 자신이 문제해결의 주인임도 잘 알고 있다. 

위 세 가지 유형 중, 아버지 D씨는 ‘불평형’에 속한다. 이런 경우는 상담 시 토론식 대화는 피하고 칭찬과 격려를 통해 D씨 자신이 문제의 주체임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힘겹게 삶을 견뎌내고 있는 D씨의 억압된 감정을 F상담사가 자극했고 급기야 상담이 취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에 기관에서는 F상담사의 입장을 공감하면서도 D씨의 성실한 경제활동과 자녀를 양육하는 책임감 등을 격려함으로써 다시 상담이 연장될 수 있도록 중재했다. 

이후 F상담사는 내담자와 함께 스마트폰을 조절하기 위한 대안 활동을 함께 찾고 제시하면서 상담을 진행했다. 그중 그림책을 활용했는데, 상담 시 E군과 함께 인터넷에 ‘거짓말 그림책’ 등을 검색해서 내담자가 관심 있어 하는 그림책을 둘러보고, 책 소개와 독자평 등을 함께 읽으면서 책 목록을 적어봤다. 그리고 학교 도서관에 가서 2권 이상 빌려오기 등을 약속하고, 다음에 만났을 때는 약속한 과제를 확인하고, 그것을 함께 이야기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정서적 관계를 재형성했다. 

또한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꿈》(그레이엄 베이커-스미스, 글그림)이라는 책을 선물하면서 읽어보시기를 권면했다. 그다음에 만났을 때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원했던 꿈은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공감하고 경청하면서 아버지께서도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시기를 부탁했다. 
특히 아버지 D씨와 E군에게 디지털 기기의 게임 등은 측두엽, 전두엽 등을 사용하지 않기에 우뇌 발달이 안 되고, 정서 지능이 낮아짐으로써 조절하는 뇌에 문제가 생겨서 쉽게 충동적인 아이가 될 수 있다는 것과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어주면, 혼자 읽을 때(5% 이해)보다 내용을 20% 이해한다는 연구 결과 등을 설명해줌으로써 긍정적인 동기를 강화시켜줬다. 

D씨도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수용 받지 못했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아들 E군과 어떻게 관계를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한 불평형 D씨는 상담을 통해서 ‘너의 탓’이 아닌 ‘나의 탓’으로, 고객형 D씨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됐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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