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 국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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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 국물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2.07.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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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그림그리기 〈52〉
장문혁 <목단꽃>  36×26㎝ 수성싸인펜.

다니던 직장에서 각자 정년퇴직, 명예퇴직을 하고서 고등학교 동창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직장에 다는 동안에는 한 고장에 살면서도 애경사 있을 때나 한 번씩 보았을까 사는 일에 쫓겨 자주 만나지를 못했었습니다. 먼저 퇴직한 내가 정년퇴직을 앞둔 친구의 사무실로 찾아갔을 때 친구가 한 말이 내 마음을 잡아당겼습니다. ‘여행을 함께할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 반갑기 그지없는 제안이었습니다.  

여행은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고 이미 많은 여행의 노하우가 축적된 친구 덕분에 수월하고도 알차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계절이 바뀌었을 때, 어떤 일을 홀가분하게 매듭지었을 때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 길지 않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두 다리로 걸으며 바뀌는 계절의 색감과 맑은 햇빛을 보는 것으로도 커다란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행의 즐거움 중 먹는 즐거움만 한 것도 없었습니다. 특히 맛있게 먹은 것은 해물을 넣고 끓인 국물이었습니다. 바지락, 가리비, 전복, 새우, 오징어가 어우러진 해물국물은 단맛을 지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맛이었습니다.   

나의 고모님은 송도(솔섬)라는 섬으로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서 빈한한 집안을 일으키셨습니다. 집안을 일으켜 세워서 잘 살게 되었어도 오매불망 걱정되는 것은 쇠락한 친정, 하나밖에 없는 조카였습니다. 조카가 튼튼하게 장성하여 친정이 번성해야 당신의 사명을 다한다는 듯 틈나는 대로 우리 집에 오셔서 조카인 나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셨습니다.  

조모가 운명할 때도 고모님이 제일 먼저 조모에게 당도하셨습니다. 갯벌에 나가 바지락을 캐고 있다가 조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길로 달음질쳐 가셨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늦게 갔으면 유언도 못 들을 뻔했지 뭐냐? 대봉리에 있는 땅 너 주라고 하시더라.’ 고모님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바지락 국물을 떠 넣으니 감았던 눈을 뜨시더라!’ 바지락 국물이 명약이라도 되는 양 바지락 국물의 신비한 효능을 말씀하셨습니다. 

고모님이 말씀하실 때 몰랐던 바지락 국물의 맛을 나이를 먹고 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신비한 효능을 상처로 아파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달고 맛있는지, 아픈 마음이 어떻게 달래어지고 위로가 되는지를 나이를 먹고서 알게 된 것입니다. 친구 내외와 여행길에서 해물국물을 앞에 놓고 한참이나 고모님 생각에 젖어 있었습니다.<끝>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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