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의 노동계급의식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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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옹성의 노동계급의식을 심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8.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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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희망의 선물! 백무산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

1988년은 1980년 5·18 항쟁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기 시작했으며, 한국의 정치제도가 본격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한 해이다. 국회가 광주학살, 1980년 언론대학살, 일해재단 비리 등을 밝히기 위한 특별위원회 청문회를 열었으며 그 결과, 전두환 부부를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로 유배시킨 연도다. 또한 서울올림픽 개최로 ‘한강의 기적’이 절정을 이뤘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제적 인지도가 본격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의 올림픽 준비를 위한 보여주기식 강제철거와 이주정책 등으로 노동자와 철거민, 노점상 등 도시 빈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받은 해다. 이러한 연고로 1988년은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해로, 1980년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연도로 각인돼 있다.

이러한 의미깊은 1988년도 그해 8월 15일 광복절에 이 땅의 노동자에게 철옹성의 노동계급의식을 심어준 참으로 의미깊은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그 시집은 바로 노동자와 민중 정서를 집중적으로 담은 시집을 시리즈로 펴낸 출판사, 청사(靑史)가 펴낸 청사민중시선(靑史民衆詩選) 서른 세 번째 시집 백무산 시인의 <만국의 노동자여>다.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73년부터 소년공으로 조선, 전기, 금속 등의 노동을 해 온 시인은 1984년 <민중시.1>에 노동자 정서를 탁월하게 형상화한 연작시 ‘지옥선’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무슨 밥을 먹는가가 문제다/우리는 밥에 따라 나뉘었다/그 밥에 따라 양심이 나뉘고/윤리가 나뉘고 도덕이 나뉘고/또 민족이 서로 나뉘고//그래서 밥이 의식을 만든다는 것은/뇌의 생체학적 현상이 아니라/사회적이고 인류적이고/그래서 밥은 계급적이고//밥의 나뉨은 또 식품문화적 구별도/영양학적 구별도 아니고 /보편의 언어요 이념이요 과학이요 인식이다//노동자의 가슴에/노동자의 피가 흐르는 것은/밥이 다르기 때문이다//그래서, 호남과 영남은/밥에 따라 다시 나누어야 한다/그래서,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도/종교가 아니라 국가가 아니라/밥에 따라 다시 나누어야 한다/그래서, 동서의 분단 남북의 갈라섬도/밥에 따라 다시 분단시켜야 한다//피땀 어린 고귀한 생산자의 밥의 나라냐/착취와 폭력의 수탈자의 밥의 나라냐//그대들은 무슨 밥을 먹는가/게으른 역사의 바퀴를 서둘러/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오직/지상의 모든 노동자들이여/형제들이여!”(시 ‘만국의 노동자여’ 전문)

시집에는 위 표제시 ‘만국의 노동자여’를 비롯해 ‘노동의 밥’, 연작시 ‘지옥선’, ‘戰死전사’, ‘전진하는 노동전사’, 연작시 ‘공구와 무기’ 연작시 ‘해방공단 가는 길’, ‘목숨’, ‘기차를 기다리며’ 등 64편의 노동계급의식을 확고하게 심고 드높이는 탁월한 서정시가 수록됐다. 시인이 시집 후기에서 “옳은 시 한 편이 우리에게(노동자 민중) 닥친 싸움의 총체적 인식수단으로써 작은 의미나마 지닌다면 한번 제대로 쓰고 싶다. 어머니 말씀처럼 ‘얘야 시 같은 것은 쓰지 말거라.’”라고 밝혔듯이, ‘시 같은 것’이 아닌 ‘진정한 시’가 보석처럼 명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시집은, 시인 김형수가 시집 해설 서두에서 “노동자 여러분! 저는 지금 참으로 반가운 선물을 앞에 놓고 제법 흥분해 있습니다. 이 선물은 햇살처럼 화사한 모습으로, 장시간 노동, 열악한 생존조건 등의 장벽을 넘어, 서서히 당신들의 가슴에 가 닿을 것입니다”라고 논했듯, 백무산 시인이 노동자에게 주는 희망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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