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서관 활용史
상태바
나의 도서관 활용史
  • 윤정용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12.01 1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는 대학에 입학한 지 햇수로 31년, 만으로 30년이 되는 해다.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도서관은 삶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삶에서 중요한 일부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남들보다 오랫동안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학교’ 그중에서도 ‘도서관’이라는 키워드로 지난 30년의 세월을 정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시기에 따라 도서관을 다르게 활용했던 것 같다. 지금부터 그 역사를 톺아보려 한다.

지금은 무인 대출반납기를 통해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지만, 예전에는 대출자가 책 뒤에 있는 도서대여카드를 직접 작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도서대여카드를 보면 대출자, 대출일, 반납일 등 대출과 관련된 정보를 알 수 있다. 영화 ‘러브레터(이와이 슌지, 1995)’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남자 후지이 이츠키는 다른 사람들이 빌리지 않는 책만 골라서 일부러 대출한다. 그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책을 건넨다. 그녀는 그가 책을 읽는 것보다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을 더 좋아하는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1990년대 초반에는 영화 ‘러브레터’에서처럼 도서대출카드를 통해서 책을 대출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1987)’,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1983), 이문열의 소설들을 대출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도서관은 책을 빌리고 반납하러 가는 장소였다. 그런데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몇 번 갔지만 금세 흥미를 잃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지만 1990년대 초반에는 대학 신입생, 특히 남자 신입생이 도서관에 발을 들이는 것은 불경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도서관보다 바깥에 재미있는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 영화 ‘건축학개론(이용주, 2012)’은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였다.

도서관을 다시 찾은 것은 군 제대 후였다. 군대 가기 전에는 불경한 것으로 여겼던 도서관 출입을 복학 후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공부를 떠나 도서관은 복학생들이 마땅히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공간이었다. 또 누군가는 그곳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소망하기도 했다. 사실 많은 예비역 복학생들이 그랬다. 그때는 책을 대출한 기억이 별로 없어 대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바코드 인식으로 대출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을 것 같다. 아무튼 이때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곳보다는 머무는 공간 혹은 만남의 공간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사회를 뿌리째 흔들었다. 외환 위기로 ‘낭만’이나 ‘꿈’같은 단어는 단어 그대로 낭만이나 꿈이 되어버렸다. 외환위기 때는 지금처럼 역설적으로 취업난이 없었다. 왜냐하면 취업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선택지는 ‘기다리는 것’과 ‘대학원 진학’ 두 가지였다. 대학원 진학은 처음부터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학원에 들어오고 나서야 도서관에 책이 얼마나 많은지, 또한 책이 얼마나 다양한지 깨달았다. 대학원 과제와 교수님 심부름 덕분에 어떤 책이 어디에 있고, 책을 어떻게 찾고, 책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도서관의 구조도 알게 되었고, 그때까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장서 번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석사학위 논문을 얼떨결에 쓰고 2002년에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체계는 없었지만 전공 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문학, 사회과학, 역사, 철학 등 다종다양하게 많은 책을 읽었다. 그때는 학위 논문 때문에 움베르코 에코, 스티븐 킹, 김인환, 김우창, 강준만, 고종석 등의 글쓰기 관련 책도 많이 읽은 것 같다. 하지만 박사학위 논문을 취득하고 강의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도서관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강의가 많아질수록 도서관은 점점 멀어졌고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2013년은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최근에 읽은 책들’이라는 제목으로 독서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원래 게으르고 어떤 일을 끝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성격인데도 이 일만큼은 10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 컴퓨터에 저장한 목록을 보니 1년에 대략 150권, 10년 동안 거의 1.500권을 읽은 것 같다. 그 가운데는 직접 구입한 책도 있지만 대다수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다. 처음에는 읽은 책에 대해 간단하게 독서일기를 썼지만, 나중에는 이것도 귀찮아서 월별로 읽은 책에 대한 서지 정보만 기록했다. 하지만 나중에 이것은 큰 자산이 되었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아홉 권의 책을 출간했다. 함께 쓴 책까지 포함한다면 몇 권 더 될 것이다. 그 책들은 지금까지 영화평론집, 독서평론집, 산문집, 문학평론집, 연구서 등의 제목을 달고 나왔다.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두 권씩 총 네 권의 책을 출간했다. 이 책들의 초고를 대부분 도서관에서 썼다. 도서관 리모델링 전에는 구관 1층, 리모델링 후에는 신관 3층 컴퓨터 열람실에서 썼다. 독서평론집 ‘무한독서(2019)’의 경우에는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에 대한 독후감 또는 평론이기 때문에 도서관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세상의 빛을 못 봤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다른 책들도 사정은 이와 비슷하다. 도서관은 학기 중에는 책을 빌리는 공간이었지만 방학 중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공간이었다. 2020년 2월 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가 그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대학 수업조차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미리 대출 신청한 도서를 1층에서 받았다. 정확히 얼마 동안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몇 달 동안 그렇게 대출을 한 것 같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도서관을 찾은 것 같다. 코로나 전 학기 중에 도서관을 찾은 횟수와 비교해보면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크게 달랐다. 못 가는 것과 안 가는 것은 차이가 크다.

코로나 중에도 직장인들은 회사에 출근했고 자영업자들은 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나를 포함한 선생들은 학교가 거의 폐쇄되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블루’를 겪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견디게 해 준 것은 도서관과 책이었다. 2022년 현재,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일상도 회복됐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시간이 흘러도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흔히 책을 읽는 목적은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제법 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 장담할 수 없다. 대신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서관이 없었다면 그리고 책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형편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은퇴 후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에서의 여유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나는 이와 정반대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도시에서 살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도서관’ 때문이다. 물론 시골에도 도서관이 있겠지만 규모나 접근성으로 보았을 때 도시의 도서관이 메리트가 더 크다. 지금까지 도서관이 삶의 일부였다면 앞으로는 도서관이 삶의 전부일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방학 때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했다. 점심때쯤 되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 몇 분이 도서관에 자리를 잡는다. 나는 시쳇말로 책에서 무언가를 뜯어 먹기 위해 책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원고를 고치는데 그분들은 여유롭게 책을 읽는다. 그리고 다섯 시 오십 분에 안내 방송이 나오면 읽던 책을 덮고 유유히 퇴근한다. ‘외국어를 배우는 비밀(The Secrets of Learning a Foreign Language)’이라는 유명한 TED 영상이 있다. 강연자는 외국어를 배우는 비밀로 ‘즐거움’, ‘방법’, ‘체계’, ‘인내심’을 꼽는다. 개인적인 생각에 책 읽기 역시 마찬가지다. 즉 즐거움으로 시작해, 자기만의 방법을 찾고, 이를 체계화하고, 꾸준히 하는 게 필요하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꾸준히 하면서 다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만족한 표정으로 도서관을 나선다. 그분들에게 책 읽기는 다시 즐거움이다. 개인적으로 은퇴 후 이런 삶을 꿈꾼다. 이런 삶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다.

학술논문에서는 도서관을 대체로 기능적인 장소로 간주하곤 한다. 이에 따르면, 도서관은 보존적 기능과 더불어 봉사지역 이용자들의 전통이나 신념, 사상 등을 표현한 문화적 유산이나 그들의 문화생활을 반영하고 있는 문화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뿐만 아니라 도서관은 교육 기능, 여가 선용적 기능, 정보제공의 기능, 그리고 연구적 기능도 수행한다. 나에게도 지금까지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곳, 공부를 하는 곳, 자료를 찾는 곳, 책을 읽는 곳, 글을 쓰는 곳 등 기능적인 혹은 실용적인 장소였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이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도서관은 즐거움을 찾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은 앞으로의 ‘나의 도서관 활용史’의 중핵이 될 것이다.

윤정용 <문학평론가·칼럼·독자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