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外傷)과 애착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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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外傷)과 애착의 관계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2.0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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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자기 방어에 아무리 능한 사람이라도 가족, 배우자, 친구 또는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입거나 부당함을 느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분노, 불안,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이러한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괴로움을 유발한다. 

N은 30대 중년 여성이다. 3년 전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했다. 결혼 전 경제력도 있고 인품이 좋은 사람들을 소개받았지만,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는 남편을 선택했다. 남편은 똑똑했고 편안함을 줬다. 결혼 후 각자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남편은 퇴근 후 컴퓨터 게임과 유튜브 시청 등으로 방문을 닫았고, 식사 시간에도 빨리 밥을 먹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때마다 N은 속상했지만 기도와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반복된 일상에 지친 N은 남편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상담을 신청했다. 

N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다. 생생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4세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함께 생활했다. 생활고로 힘들어진 엄마는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 현관 앞에 자신을 두고 떠남으로써 새엄마랑 몇 개월을 함께 살았다. 두 분의 갈등으로 5세 때 친가에 맡겨졌고, 조부모는 자신을 안쓰러워 하기보다는 다락방에 2~3개월 동안 방치한 채 돌봐주지 않았다. 이후 부모님이 다시 재결합했는데 처음 보는 동생이 등장했고, 또 남동생이 태어났다. 그리고 아버지의 외도와 폭음, 폭력도 더해져서, 집안 분위기는 항상 싸늘하고 냉랭하기만 했다.

우연히 친구의 전도로 가게 된 교회는 편안했고, 따뜻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가 됐고, 특히 외국에서 온 선교사님들의 설교는 중학교 여학생에게 꿈을 심어줬다. 그때부터 교회와 학교를 오가면서 공부와 신앙생활에 전념했고,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정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N의 부지런한 태도는 부모님으로부터 칭찬과 격려보다는 무시와 홀대를 받았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인간쓰레기로 보였고, 어머니는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느껴졌다.

테데스키와 칼훈(Tedeschi & Calhoun, 2004)이 제시한 외상 후 성장이론에 의하면, 외상 사건은 우리 개인의 신념과 목표, 세계관을 뒤흔들어 무너뜨리고, 우리에게 더 높은 차원의 목표와 신념, 인생 담화, 정서적 고통을 다루도록 도전시킨다고 했다. 이를 위해 외상 사건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추와 자기 노출(글쓰기, 대화, 기도)을 하며, 이러한 반추 과정에서 사회적 지지(사회문화적 요소의 공급)의 영향을 받아 보다 정교한 삶의 도식과 인생 이야기를 재건하고 발전시켜 외상 후 성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외상과 같은 심각한 위기에서의 개인차를 설명할 때 중요한 심리적 특성 중 하나는 애착이다. 애착은 그 본래의 기능이 안전한 피난처와 안정 기반의 제공이라는 점에서 외상과 직접 관련되기 때문이다. 외상은 어떤 것이든 애착 체계를 활성화시키지만 외상으로 인한 정서적 고통과 인지적 혼란의 극복에 필요한 자기 노출과 사회적 지지에 접근하는 방식은 활성화된 애착 체계의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N은 생애 초기부터 주 양육자인 부모님과 안정된 애착 형성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교회를 통해서 자신에 대한 가치를 확인하고 자기 개념을 형성하면서 성장하였다. 특히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지각함으로써 대인관계에서의 친밀감, 친사회적 행동 등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남편의 반복되고 지속적인 디지털 공간으로의 도피는 N에게 어린 시절 ‘버림받은 나’라는 자기 표상이, 타인에게 ‘나를 버리는 모습’으로서의 대상 표상이 더욱 강렬하게 출현함으로써 두려움과 우울감, 고립감을 느끼게 했다.

이런 경우 상담자는 불안 및 회피 애착을 지닌 N에게 지나친 집착과 정서적 단절을 부인하기 보다는 외상 사건에 따른 부정적 사고와 감정을 표현하고 N이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여 진정한 욕구를 깨닫고 스스로의 강점을 인식하도록 도와서 외상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한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그중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관계는 바로 부부관계이다. 불안정한 애착 관계로 형성된 N씨 부부가 안정된 애착 관계로 성장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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