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변은 하나의 작품… 상대방 연구하고 감동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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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변은 하나의 작품… 상대방 연구하고 감동시켜야”
  • 홍주일보
  • 승인 2023.08.0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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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 삶의 길을 묻다 〈6〉
나의 삶, 나의 길-편기범 국제스피치학회장·너른내장학회 이사장 〈2〉

홍성 광천 출신으로 전국 스피치 웅변대회에서 1967년 대통령상 197호, 1971년 대통령상 457호, 1977년 대통령상 861호 등 대통령상(大統領賞)을 3회 수상한 웅변인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연설 지도 경험이 있는, 40년 넘게 서울에서 웅변을 가르친 웅변계 대부(代父)로 불린다. 고향인 광천에서는 ‘기부계 대부’로 통한다. 법무연수원, 경찰대학, 경찰종합학교 스피치학 초빙교수, 행정안전부 인재개발원 스피치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편기범 웅변연설집’과 ‘8주 완성 웅변 연설 비결’ ‘선거 연설의 방법과 실제’ 등 다수의 책을 집필, 책을 펴내기도 했다. 2021년 37년 만에 고향인 광천으로 귀향했다. 귀향 이후 2021년 광천중학교총동문회 체육대회 대신 연탄 나누기 봉사를 시작으로 ‘광천을 말하다’ 연사로 광천 발전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광천의 75세 이상 독거노인 130여 명에게 연탄과 쌀, 떡국 등의 나눔 행사도 하면서 고향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지난 1979년 쌀 한 가마니가 3만 원이던 시절 광천초등학교 졸업생 10명에게 매년 장학금 50만 원씩을 후원하기 시작해 44년에 걸쳐 한 해 동안 모은 돈 30~40%씩을 떼어 66차례 7억여 원의 장학금을 기부해 오고 있다. 2000년 ‘너른내장학회’를 설립해 너른내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홍주신문의 ‘리더에게 삶의 길을 묻다’ 5번째 기획으로 ‘나의 삶, 나의 길’ 웅변 인생, 기부 인생-편기범 국제스피치학회장·너른내장학회 이사장 편을 ‘한국산문 김미원’의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 “쟤 뭣 좀 하겄네”

초등학교 시절부터 체격 좋고 운동 잘하고 공부 잘하고 말을 잘해 어른들이 ‘쟤 뭣 좀 하겄네’ 했다. 광천중학교 시절에는 씨름선수로 광천, 결성 등의 난장에 친구들과 다니면서 씨름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유도 2단을 딸 정도로 운동을 하면서도 그냥 공부도 잘 했다. 자연스레 정치의 꿈을 가졌다. 

웅변도 정치가가 되기 위해 시작했다. 웅변 특기생으로 경희대 정치외교학과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대통령상 등 한학기 동안 우승기 7개를 가져오는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 그에게 인생은 친절하지 않았다. 2학년 때 우연히 지나다가 ‘임시 총학생회’ 푯말을 보고 들어간 사건이 편하게 펼쳐질 것 같은 인생의 행로를 비틀었다. 

총학생회장은 능력 있는 사람이 선출될 수 있도록 깨끗한 선거가 이뤄져야 하고, 능력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돈을 쓰는 사람은 사퇴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학생회장 간선제에 반대하며 학교측의 책임 있는 의견을 굉장히 강하게 부총장에게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의 여파로 장학금을 못받게 됐어.”

아버지 돌아가시고 장학금도 끊긴 상태에서 그는 군대에 갔다. 육군에 복무하며 웅변대회에 나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군 웅변대회가 어려워요. 연대 대항, 사단 대항, 군단대항, 사령부 대항 등 일곱 단계에 걸쳐서 군 대표가 돼요. 육군, 해군, 공군, 예비군, 여군 등 7개 군 대표와 13개 시·도 대표들과 겨뤄서 대통령상을 받았어요. 웅변 우승하면 외출할 수 있어 집사람 만나려고 열심히 했지유(웃음).”

표준말을 구사하는 그에게서 처음으로 사투리 억양이 나왔다. 선생은 한 번 타기도 어려운 대통령상을 1968년에 한 번, 1971년에 한 번, 1977년에 한 번 받는 등 세 번이나 받았다.

“군대 갔다 와서 웅변학원을 냈어요. 내가 서울 웅변학원 관인 1호예요. 69년에 학원인가를 받고 동대문에 학원을 냈는데 수강생이 몰려들었어요. 학원에서 먹고 자며 쉴 새 없이 가르쳤지요. 정치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정치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정치인을 가르쳤다. 유명세로 공중파를 탔다.

“집사람은 대학 졸업하고 고등학교 선생으로 가고 나는 열심히 가르치고 그런대로 순조로웠어요. MBC에서 공중파를 처음 탄 날이에요. 방송하고 집에 가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전화가 왔어요. 서울에서 데리고 있던 동생 둘을 데리고 광천에 갔지요. 자리 잡히면 어머니를 모시려고 했는데, 마음속에 한이 됐죠.”

갑자기 부모님 돌아가시고 사업에 실패한 형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네 동생들을 책임지면서 정치 꿈을 완전히 접었다. 대신 정치를 하겠다고 모여든 대통령 후보, 국회의원 후보, 단체장 후보들에게 연설을 가르치고 연설문을 써줬다. 대통령 취임사 교정을 보기도 했고 마음 맞는 정치인을 돈 한 푼 안 받고 돕기도 했다.

“메뚜기도 한철이지만(웃음) 인간이 안 된 사람 연설문은 사기 치는 거라 생각해 아예 쓰지 않았죠. 나는 웅변을 작품으로 만듭니다. 상대방을 연구하고 감동시켜야 해요.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말 못 하고 마음 약하고 배짱 없는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크게 안 입힌다, 말 잘하고 배짱 있는 놈이 남에게 피해를 크게 입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됨이 중요해요. 몇 시간씩 후보랑 이야기해서 정체성과 인생관을 파악한 후에 쓰고 가르칩니다. 어느 해인가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구청장 25명 중 내가 가르친 구청장이 8명이더라구요.”

‘아주 높은 곳’에서 연설 지도를 부탁했다. 어떤 대통령이냐고 묻자 말을 사렸다.

“그건 얘기 못 하죠. 나를 데리러 온 국회의원한테 나를 데려가려면 선거운동 시작하고 딱 한 달 동안 5000만 원 내놓고 데려가세요, 그렇게 말하고 간접적으로 거절했어요.”

청와대에서 대통령 연설 지도는 하지 않았지만 웅변인의 꿈이라는 관중 200만 명이 모인 여당 대통령 후보 찬조 연설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웅변인들의 최대 로망은 이념이나 정치철학을 떠나서 여당의 대통령 후보와 함께 연설을 하는 게 최대의 로망이다. 여당 대통령 후보와 연설하는 것은 내용이나 스킬 면에서 최고임을 자동적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했는데 나도 그렇게 많은 관중은 처음 봤어요. 여의도에 다 못 들어와 남쪽은 영등포 로터리에서 북쪽은 마포 가든호텔까지 사람들이 모였어요. 대통령 후보, 국회의장, 그리고 나, 셋이 연설을 했지요.”

그는 ‘폐부에서 흘러나와서 줄기찬 흥미로 잡아당기지 않는다면 세상을 사로잡을 수는 없지. 어차피 자네의 폐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사람의 폐부를 꿰뚫지는 못하는 것이다’라는 파우스트의 말을 저서에 인용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폐부를 뚫고,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까지 감동시키는 연설을 목표로 삼는다.

1971년 대통령상을 두 번째 도전할 적에는 연단에 올라가기 전에 측근에게 심사위원 다섯 명 중에 두 사람이 비호감을 가지고 있다. 웅변하는 도중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동하는 모습을 보이면 청중을 넘어서 심사위원을 상대로 감동시키는 원고를 썼고, 비호감 심사위원까지 감동시키는 원고를 쓴 것이 주효했기 때문에 대통령상을 탄 비결이기도 했다.

동대문구에서 압구정동으로 학원을 옮긴 그는 학부모들 사이에 ‘압구정 편선생’으로 유명했다. 학생회장, 학급회장을 꿈꾸는 어린이들을 지도했다.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배우러 온 학생들을 모두 가르치지는 않았다.

“말공부는 인간을 공부하는 거예요. 사람이 안 되면 가르치지 않아요. 1년 훈련받고 원고 써주죠. 왜냐하면 학부모들의 사회적 수준이나 경제적 여유 때문에 어린이회장 선거가 생각보다 치열해요. 지금은 많이 완화됐지만 경기초등학교를 비롯한 리라초등학교, 한양초등학교, 경복초등학교 등 사립초등학교 학생회장 선거는 치열해요. 학생회장 선거가 국회의원 선거보다 더 요란하고 복잡하고 어려워요.(침묵) 나중에는 후회도 들더라고요. 정치하겠다고 웅변 시작한 놈이 겨우 사기꾼들이나 가르치고 어린이들이나 가르치면 되겠는가 했는데 전문가 입장으로 프로로 가자 마음을 잡았지요.”

전국 어디를 가나 정치인이나 유명 스피치 강사 제자를 두고 있는 선생은 웅변과 연설에 대한 저서 7권을 냈다. 모두 실용서로 발표력을 키우려는 사람들과 웅변 학원 선생들이 참고서로 쓰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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