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우리를 성공한 사람이 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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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우리를 성공한 사람이 되게 하는가
  • 장정우 <공익법률센터 농본 활동가>
  • 승인 2024.02.0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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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회장님이 아는 사람 중에 누가 책을 가장 많이 읽었나요? … 제가 뭘 좀 새로 연구해보려고요. 책을 많이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하잖아요? 진짜로 그런가 해서”(김종광, 《성공한 사람》, 82쪽). 김종광 작가가 쓴 소설, 《성공한 사람》 속 중학생 성빈은 문득 떠오른 ‘연구’를 위해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책벌레, 성공한 사람, 훌륭한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성빈의 연구는 점점 미궁에 빠진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치고 스스로 성공했다고 자평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쯤 슬그머니 《홍주신문》의 지면을 차지한 ‘녹색문고’는 지역의 이웃들이 모여 책을 읽고 쓴 서평을 소개하고 있다. 매월 오프라인 모임을 해오며 한 달에 한 편씩 현재까지 총 24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지만, 여전히 서평이란 무엇인지, 점점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 책을 소개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니 애초에 내가 쓰는 글의 의미는 무엇인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곤 한다. 
 

장일호/낮은산/1만 3500원.

그럼에도 새해 들어 ‘지역을 바꾸는 녹색문고’라고 이름 짓고 계속해 글을 싣는 까닭은 무엇인가. 에세이라고도, 서평집이라고도 불릴 만한 《슬픔의 방문》에서 장일호 작가는 책을 통해 자신의 주변 사람(타자)에게 다가간 여정을 공유한다. 책을 매개로 그는 외할머니를, 엄마를, 남동생을, 배우자를, 시어머니를 다시 만난다. 철학자 질 들뢰즈는 글쓰기를 동물-되기, 소수자-되기, 여자-되기라 불렀다(김홍중, <마주침과 글쓰기>, 《서울리뷰오브북스》 12호, 251쪽). 그렇다면 글을 읽는 독자는 책을 통해 ‘소수자’를 만나고, ‘동물’을 만나고, ‘여자’를 만나는 것 아닐까.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총선일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이들의 선거전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이들을 외면하고 싶어하는가. 그 이유는 그들의 각축전에 그들 아닌 다른 존재가 보이지 않기 때문 아닐까? 헤드라인을 달구는 정치 기사에서 유독 자주 보이는 단어가 있다. ‘분열’, ‘뺄셈’, ‘양극’, ‘불통’, ‘대립’. 정치경제학자 홍기빈은 지금의 정치를 바닥에 부딪혀 깨진 사탕에 비유한다. 깨진 사탕은 두 조각(진보와 보수)으로 나뉘지 않는다. 잘게 조각날수록 회수할 수 있는 사탕의 조각(선거로 대변되는 이들)은 줄어든다. 부자 포퓰리즘과 같은 정책이 출현하는 이유다. 

다시, 책은 우리를 성공하게 하는가? 아니면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는가? 이런 분열의 시대에 최소한 타자에게 관심을 두고 다가가려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는 보다 나은 시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시민들이 모인다면 지역을 변화시키는 것도 가능할 거라 믿는다. 책을 읽는 행위는 타자에 대한 나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며, 타자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이 담긴 ‘행동’이다. 서평은 타자에게 다가가려 했던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통해 보다 성공한 사람은 못되더라도 좀 더 나은 시민이 되어보자. 앞으로도 지면을 통해 대안의 숲이 되고 전환의 씨앗이 될만한 책을 꾸준히 소개할 예정이니 2024년에도 잘 부탁드린다.

“나는 우리가 먼저 정직해지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혁명은 없을 것이다. 이 체제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나갈 것이고 우리도 그래야만 할 것이다. … 이제는 울퉁불퉁한 길을 일단 걸어가본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힘은 누군가로부터 오는게 아니라 나에게‘도’ 있다는 걸 믿으면서.”(장일호, 《슬픔의 방문》, 7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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