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 3·1운동만세시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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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 3·1운동만세시위지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5.09.11 07:05
  • 호수 908호 (2025년 09월 11일)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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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우리지역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알기 〈6〉
【3·1독립운동/거리/변형/사적 미지정/금마면 가산리 472-1일대】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역의 항일독립운동 현장인 사적지를 탐사, 항일독립유산을 체계적으로 보호·관리·활용하기 위한 발굴·기록·교육·홍보 등을 통해 정신적 유산을 계승,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조명되도록 항일독립유산의 사적·기념물 지정 등의 촉구를 위해 ‘우리 고장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알기’를 통한 지역공동체 캠페인을 진행한다. 【사적지명/분류/종류/상태/사적지지정/주소】순 <편집자 주>

금마 3·1운동만세시위지 일대

홍성군 금마면 가산리 472-1일대는 1919년 4월 1일 민영갑 등의 주도로 금마면민들이 3·1독립운동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이다. 현재는 도로가 새로 건설되고 일부 건물이 세워져 당시 상황과 비교할 때는 거리가 변형됐으나 현재에도 넓은 공터가 남아 있다.

홍성 금마면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독립만세운동이 불같이 번지고 있던 1919년 4월 1일 밤, 민영갑(閔永甲) 등의 주도로 가산리의 임시연극공연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민영갑은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해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임시 연극 공연장에 온 군중들과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하고, 최중삼(崔仲三, 八龍)·김재홍(金在洪)·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김종석 등의 동지를 규합했다. 

4월 1일 오후 8시경 연극공연 중 조한원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관중들이 일제히 호응해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때 공연장 가까이에서 독립만세소리를 들은 주재소의 경찰들이 즉시 출동해 시위를 탄압하고 주도 인사들을 체포했다. 이날 체포되지 않은 인사들은 2일에 홍성장터에서 열린 만세운동에 합류해 또 다시 독립만세를 외치며 봉기했다.

이들은 4일 밤에도 죽림리 철마산을 중심으로 부평리 원당산, 송암리 퇴뫼산 등 각지의 산 정상에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일제히 횃불을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시위로 6명이 징역 6월에서 1년의 옥고를 겪었고 177명이 태형 30도에서 90도의 형벌을 받는 등 고초를 당했다. 

‘대정(大正)8년형공제328호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19년 5월 30일)에 의하면 홍성 금마면 가산리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사실이 기록돼 있고, 연구 자료와 지역 주민들의 증언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04년에는 금마만세운동사와 애국지사 명부가 수록된 실록을 편찬함으로써 홍성지역 만세운동의 중심역할을 했던 금마독립운동에 대해 역사적인 의미 등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금마 3·1독립운동 만세시위는 홍성지역의 대표적인 만세시위로 183명의 인사들이 태형이나 옥고를 겪어 역사적 의의가 있다. 금마 3·1독립운동 만세시위지에 기념 표지석 등을 설치해 독립운동사적지로 알릴 필요가 있는 곳이다.

철마산 3·1공원은 기미독립 만세운동에 앞장선 애국지사 184명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자 1992년도에 조성된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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