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잃은 그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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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잃은 그대들에게
  • 이석호 편집국장
  • 승인 2013.05.2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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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문왕의 서자로 알려진 궁예는 승려의 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다.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지친 삶을 보듬은 궁예는 백성들에게는 메시아 같은 인물이었다. 궁예는 백성들이 입는 거지같은 옷을 걸치고 백성들과 잠자리를 같이하면서 신분의 격차가 없는 평등한 나라, 미륵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설파해 백성의 지지를 얻었다. 그런 후광을 바탕으로 후고구려도 세웠다. 나라를 세운 뒤 궁예는 돌연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바뀌어 신하와 백성들을 짓눌렀다. 자신을 신격화해 부처라 칭한 뒤 막대한 자금을 들여 궁궐과 전각을 짓고 사치를 일삼았다. 초심을 잃은 궁예는 결국 원성이 폭발한 백성들이 던진 돌에 맞아 최후를 맞았다.

지방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출마를 준비하는 정치인들이 바빠지고 있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으려 새벽부터 밤늦도록 마을 구석구석까지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누고 수많은 공약도 내놓는다. '지역 발전을 위해 이 한 몸 던지겠다' '지역사회를 위한 마지막 봉사의 길이라 생각하겠다' 등등. 또 이미 제도권에 진출한 일부 출마 준비자들은 지역구 사업 챙기기에 혈안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도 꼭두새벽부터 유권자들을 알현(?)하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나 선심성 예산을 편성해 지역구에 환심을 사려는 행태는 지방자치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는 판박이의 모습이다.

선거 때마다 출마자들은 많은 약속을 한다. 그중에서 가장 흔히 하는 말이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처음의 마음처럼 시종일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진하겠다는 언약을 정치인들은 항상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런 공약(空約)에 속아 유권자들은 표를 희사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유권자들은 초심을 잃은 그들을 보며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 당선되자마자 권위에 휩싸여 군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지역발전 보다는 자신의 잇속이나 표 챙기기에 더 열을 올리는 모습은 희망을 갈구했던 유권자들을 자괴감에 빠져들게 했다.

이제 1년 뒤면 또 선택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번 선거에서도 공언(空言)과 식언(食言)들이 난무할 것은 뻔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코 감언이설에 속아 또 다시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군민들의 바람을 외면했거나 주어진 직무는 태만한 채 자신의 욕심 채우기에만 충실했던 출마자에게는 분명 준엄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백성들이 추앙했던 궁예가 백성들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처럼 말이다. 초심은 유종의 미와 일맥상통한다.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끝마무리도 처음의 마음과 같다. 그래서 현인들은 '가장 지혜로운 삶은 영원한 초심자로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현란한 말솜씨나 장밋빛 공약보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맡은 바 일을 수행해 내는 진정한 일꾼이 누구인지 유권자는 알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초심을 잃은 자들에게 한편의 옛이야기 선사한다.

유럽의 한 성주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목동을 만났다. 성주는 첫 눈에 목동의 성실함을 알아보고 성으로 데려와 재산관리를 맡겼다. 그러자 신하들은 질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목동이 성 꼭대기에 있는 창고를 몰래 올라갔다가 한참 만에 내려오는 모습이 이따금 눈에 띠었다. 그 창고 열쇠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꼭 간직하고 있었다. 신하들은 재물을 빼돌려 숨겨놓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성주에게 고자질을 했다. 금은보화가 가득 차 있을 것을 예상한 신하들은 성주의 허락을 얻어 창고를 열었다. 그러나 문이 열린 창고에는 낡은 조끼 한 벌과 장화 한 켤레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 여긴 성주는 목동을 불러 물었다. "너는 왜 보잘것없는 물건을 보물처럼 창고에 감춰두었느냐" 그러자 목동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성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제게는 두 가지 물건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에 와서 호위호식하다 보니 사람인지라 때로는 성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마음이 높아지려고 할 때가 있었지요. 그때마다 저 물건들을 바라보면서 처음에 베풀어주셨던 성주님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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