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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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 권기복<홍주중 교감·시인·극작가>
  • 승인 2013.06.0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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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내가 오늘도 직장에서 힘을 내며 열심히 사는 이유도 사랑하는 사람들-내 아이들과 아내, 어머니, 동료와 친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저마다 인생의 횃불 같은 사랑이 첫사랑이 아닐까 싶다.
"너와 내가 한 편이네. 반갑다."
"응."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서울에 사는 작은아버지 댁을 가게 되었다. 장충체육관 뒤, 남산 성벽 아래였다. 스무날 가까이 작은아버지 댁에 머물면서 한 번도 짝을 바꾼 적이 없었다. 그 덕분에 둘은 아주 친해졌다. 그 아이는 가끔 작은아버지 댁에서 함께 점심밥을 먹기도 하였다.
나는 그 아이와 함께 다니면서 남산골 곳곳과 친숙해졌다. 아마 나 혼자 거닐고 다녔다면, 추억에 남는 배경들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두 해가 지나서 다시 작은아버지 댁을 갈 수가 있었다.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수십일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가 '나를 모르면 어찌하나?', '알면서 모른 체하면 어찌하나?' 하는 불안한 마음도 더욱 방망이질을 치게 하였다.
그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기복이니? 그새 많이 컸다."
예전에 한 뼘은 더 컸던 그 아이도 여전히 한 뼘은 족히 더 컸다. 한 일주일 정도는 두 해 전처럼 재미있게 지냈다. 오히려 예전보다 정이 더 각별하였다. 처음 그 아이 집에 초대받아서 밥도 먹게 되었다.
그 아이 집은 2층이었다. 계단을 타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구석구석에 보따리로 묶어놓은 짐들이 쌓여 있었다. 그 집을 나올 때, 그 아이가 따라 나왔다.
"우리 내일 이사가."
"어디로?"
"강원도 원주."
"응."
순간 눈물이 핑 돌아서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 때였다. 그 아이는 갑자기 뛰어와서 입을 맞추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물러서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양 팔에 붙잡힌 상태라 소용없었다. 나는 그 아이를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그 아이의 양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다음 날, 점심 무렵에 이삿짐을 실은 차는 떠났다. 높은 트럭 위에 아빠와 함께 앉은 그 아이는 보일 듯 말듯이 손을 흔들었다. 눈빛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강원도 원주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지금도 어쩌다가 원주를 지날 때면, 그 아이를 만날 것만 같았다. 그 후로 작은아버지 댁에서 어찌어찌 지내고, 시골로 내려왔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 눈물이 섞여 찝찔했던 그 순간만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그게 나에게는 첫사랑이었다. 물론, 그 때는 사랑인 줄도 몰랐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그리워지면서, 아련한 그 추억이 첫사랑으로 자리 잡은 것이란 걸 깨달았다. 사춘기도 오지 않은 애들이 무슨 사랑이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정을 통하고, 잊지 못하면 그게 사랑이 아닐까?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추억 속에만 아련하게 남아 있다.
나의 첫사랑은 찝찔한 눈물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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