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공천제와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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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공천제와 지방선거
  • 이석호 편집국장
  • 승인 2013.06.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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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둘러싼 정치권의 우보(牛步)가 계속되면서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후보자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 모두가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정치개혁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지방선거를 1년 앞둔 현재까지 정치권에서는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소극적인 정치권의 행보를 볼 때 국민 여론을 살피며 어떤 방식으로 공약을 철회해야 하는지 명분을 찾는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정당공천제 존폐 문제는 정치권 내부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내년 지방선거의 핵심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시도지사협의회와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군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구의회의장협의회 등 지방4대 협의체가 정당공천제 폐지를 중앙 정치권에 강력하게 건의하고 새누리당에 이어 그동안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민주통합당도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공론화 작업에 돌입하면서 실현 여부에 후보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오래전부터 대두되어 왔다. 물론 정당정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후퇴시키는 것이며 여성이나 새롭게 정치에 입문하려는 정치신진 등 소수 세력을 보호할 수 없다는 정치권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정당공천제를 폐지할 경우 지방자치를 단순한 행정업무 등 실무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거나 지방 토호 세력 등 기득권층이 지방정치를 장악함으로써 토착비리를 양산해 낼 수 있다는 지적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보아온 것처럼 정당공천제로 인한 폐해는 심각한 수준을 넘고 있다. 선거 때마다 풀뿌리 생활정치인 지방정치는 사라지고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을 띤 선거로 부각시켜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에 예속시켰다. 당선이 된 후에도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보다는 소속된 정당의 입장에서 정책 등이 휘둘려 왔다. 특정 정당이 지역정치권을 독식하면서 정치적 담합 등을 통해 비리를 양산시키고 지역주의를 부추겼다. 인물과 정책으로 지방 살림꾼을 뽑는 것이 아니라 특정정당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는 무감각한 투표행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드러나는 각종 공천 병폐는 더욱 경악케 한다. 중앙 정치권에서 공천권을 가지고 있다 보니 출마자들이 유권자를 만나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 등을 논하기 보다는 공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회의원의 꽁무니를 쫓아 다니는 눈치보기가 체질화되어 있다. 국회의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모든 일정을 내팽개치고 국회의원이 참석하는 행사에 달려가는가 하면 공천을 받기 위해 엄청난 액수의 '뒷돈'을 바치는 '검은 거래'도 현실화되고 있다. 정당공천제로 인한 이런 병폐들은 결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약화를 가져오고 또 다른 비리로 이어지게 만드는 정치 왜곡현상으로 되돌아온다. 국민들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실시한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에서도 국민 과반수이상이 폐지에 찬성한 반면 반대 의견은 2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정당공천제 폐지를 둘러싼 민심의 향배는 이미 판가름나 있다.

기초단체장 등 기초자치선거는 풀뿌리 생활정치 선거다. 중앙 정치의 눈치를 보고 정책을 따라가기 보다는 주민들의 의지대로 지역의 발전과 살림살이를 충실하게 챙길 참된 일꾼을 뽑으면 된다. 굳이 특정 정당에 예속돼 중앙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지금으로 보아서는 정당공천제 폐지 이후 나타날 부작용보다는 존속시킴으로써 발생되는 병폐가 더욱 심하다. 만약 정당공천제 폐지 이후 발생될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보완책을 만들면 그만이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치권이 국민들과 한 약속이다. 지난 대선 당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줘 지방자치제를 활성화시키겠다고 국민들에게 철석같이 약속했고 일부 법제정 등의 의지까지 내보였었다. 이제 와서 이해득실을 따져 여론을 거스른 채 슬그머니 없던 일로 한다면 가뜩이나 밑바닥인 정치권의 신뢰도는 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다. 국민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신뢰정치를 구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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