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꼭 잘 되길 빈다.”
그는 한마디 툭 던지고 걸음을 빨리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진영은 대학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슬쩍 떠오른 현우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헐렁헐렁한 가방을 메고 앞서 걸어가는 현우의 쓸쓸한 뒷모습을 잠자코 바라보던 진영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현우의 곁으로 다가섰다.
“현우야. 난 모처럼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은데, 대학도 같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어.”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는 진영에게 현우가 씁쓸한 웃음으로 답했다.
“대학? 대학 같은 건 생각해 본 적 없어.”
“아냐. 네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조금만 노력하면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도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었다구.”
진영이 애써 쾌활하게 웃으며 현우의 기분이 상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했다.
“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냐? 대학 나와야만 사람 되는 건 아니잖아. 대학, 아니 대학원까지 나와서도 남 등쳐먹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냐? 대학을 못나오더라도 사람답게 사는 게 중요해.”
“물론 그렇지. 대학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하지만 학생의 본분이 뭐니?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내기 위해서 학교에 다니는 건 아니잖아. 학교공부라는 게 실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훌쩍 집어던질 수도 없는 것 아니니? 이왕 학교에 다니는 바에야 본분을 충실히 지켜 공부를 해야 나중에 후회도 없을 거 아냐. 대학을 꼭 가야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손해 보는 것도 없잖아.”
침까지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는 진영의 모습은 너무나 진지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네 말도 일리는 있지만, 난 안 돼. 해봐야 소용없어.”
현우는 계속 자기를 설득하려는 진영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냐, 현우야. 공부라는 게 재미 붙이면 할 만한 거야. 지레 포기할 게 아니라구. 한번 해보자.”
“어떻게?”
현우는 지독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 귀찮은 듯 물었다.
“내일부터 나랑 같이 공부하는 거야. 방과 후에 학교에 남아서, 아니면 우리 집도 괜찮고.”
현우는 저만치 앞만 바라보며 걸을 뿐 말이 없었다. 공부를 한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방과 후 시간을 진영과 함께 보낸다는 건 그리 싫은 일은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일찍 집에 가봐야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밖에서 어슬렁거리던 참이었다. 심심함을 덜고자 자주 왕순에게 들르긴 했지만 일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요즘은 발걸음도 뜸한 상태였다.
“어떠냐? 응?”
진영은 현우 앞을 가로 막고 서서 팔을 잡고 졸라대었다. 얼굴 가득히 호의와 웃음을 담은 진여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돌린 현우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뭐, 힘든 일도 아닌데 그렇지 뭐.”
멋쩍은 듯 웃는 현우의 어깨를 치며 진영이 제자리에서 펄쩍 뒤며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경우는 자꾸만 팔을 잡아당기는 재민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숱이 많아 더부룩한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어 넘긴 재민은 한쪽 덧니 때문에 앳되 보이는 얼굴로 생글거리며 경우에게 졸라대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