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옹암포甕岩浦을 그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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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옹암포甕岩浦을 그려보며
  • 구재기 시인
  • 승인 2014.09.1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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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과 함께하는 시로 찾는 ‘너른 고을 홍성’ <62>

지나간 시간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깊은 곳에 이르러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그 시각, 그 자리에 선다면

물은 아래로 흐르다가
꿈꾸고 나면, 무른 곳
찾아 스며들게 마련인 것
예부터 비워있는 곳 채우고는,
끝내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물길 견고히 지켜진다면
왕이 되어, 온 세상의 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리기보다도
그 자리에 걸음 멈추고 싶은 곳

그렇다, 살아가는 것이란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에
아무런 걸림이 없다는 것
그래서 그 속에 살아가는 것이란
언제나 반복일 뿐, 멈춤은 없다.

옛 향기에 묻혀
내 살아갈 오늘의 모습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가도
바람 거칠고 구름 지나는 동안
선 자리 바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홍성 최고의 명물은 누가 뭐라고 해도 ‘광천새우젓’이다. 그뿐 아니라 광천읍을 가로지르는 광천천에는 한때 사금이 많이 나와서 사금 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광천읍에는 알부자들이 많이 살았다. 광천의 관문인 ‘옹암포(饔巖浦)’ 또는 ‘옹암항’은 서해안 섬들의 유일한 통로였으며, 충남 최대의 시장인 광천시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관청 많은 홍성에 가서 아는 체하지 말고, 알부자 많은 광천에 가서 돈 있는 체하지 마라’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광천 새우젓 장터의 뿌리는 고려 초 물물교환이 시작되기 이전부터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새우젓을 사고파는 옹암포구(독배, 독바위)가 새우젓 시장의 틀을 갖춘 것은 조선시대 말엽 들어서면서부터라 한다.

조선 말엽 서해 도서지방 고기잡이배가 잡아온 새우를 옹암포에서 천일염에 절여 팔면서 새우젓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독배’라고 불리는 이 옹암포구는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하루 평균 100여척의 어선들이 들어올 정도로 서해안의 커다란 항만이었다.

보령시 원산도(元山島)와 안면도를 비롯한 서해안 섬사람들이 여러 가지 해산물과 어패류를 배에 싣고, 보령시 오천항을 거쳐 옹암포에 들어와 광천장에서 그것들을 팔곤 하였다.  광천장이 서는 4일과 9일에는 150여 척의 장배가 드나들 정도로 크게 번성하였다. 

‘당산’이라 불리던 옹암리 마을 뒤편 야산에는 암반을 구불구불 파 들어간 새우젓 토굴이 30여 개나 있다. 토굴이 몰려 있는 곳은 옛날에 어선들의 무사항해를 빌었던 당집이 있었던 곳으로 ‘잿배기’ 라고 불리던 작은 언덕이다. 잿배기 언덕 앞으로는 토굴새우젓 상가들이 밀집돼 있고, 저마다 토굴입구로 연결되게끔 건물구조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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