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주 열사 사후 105년만의 사료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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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주 열사 사후 105년만의 사료공개
  • 홍주일보
  • 승인 2015.08.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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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5일로 우리는 벅찬 감회속에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조국은 광복을 맞았지만 광복을 맞기까지 조국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충절열사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게 온전한 광복을 이루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광복 65돌을 맞아 광화문이 옛 모습을 되찾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순국열사들의 유적은 대부분 방치돼 있고 기록물은 유실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무분별한 개발로 생가 등은 이미 오래전에 자취를 감추거나 잡초만 무성한 것이 현장의 모습이다. 선열들의 유적과 기록을 제대로 관리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하는 보훈당국도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세월의 무게 속에 생가나 사당이 허물어지고 담장이 무너져도 “예산이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는 무책임한 답변만 들려올 뿐이다.

조국이 광복을 맞았지만 상당수 후손들은 대가 끊기거나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아 보훈연금 대상자가 되더라도 경제적 혜택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망국의 울분에서 떨쳐 일어나 목숨을 던진 순국열사들의 후손들은 방치된 유적만큼이나 외로운 처지다. ‘매국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는 실례다. 국가보훈처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 훈장을 받게 되면 본인을 포함해 3대까지 보훈연금이 주어진다. 하지만 순국열사들의 유족들은 이런 혜택을 대부분 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유공자들과는 달리 순국에서 유공자 지정까지 걸리는 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지정을 받는다 해도 3대가 생존한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보훈당국이 앞장서 적극적인 현장조사나 사료를 발굴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설명이고 보면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다. 후손들이 직접 나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공적기록을 모으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빙서류를 갖춰 훈장을 신청해야 하고, 고생 끝에 훈장 서훈이 되더라도 실질적인 혜택은 별무라는 불만이 터지는 이유다.

본지가 이번 광복 70주년을 맞으면서 홍주의병으로 활동하다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자결한 홍주출신 이근주(1860∼1910) 열사와 관련된 기록물을 사후 105년만에 발굴·공개하게된 것은 실로 뜻 깊은 일이다. 이 열사의 손자인 이강세 씨는 “나이 들어 눈까지 침침해 여기저기서 자료를 모으고 수집하는 일이 보통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니었다”고 회상하면서 “어느 나라가 훈장 주는 일을 후손들에게 떠넘기느냐”고 반문하는 목소리에서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공적과 기록보존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현실에서 하나뿐인 목숨을 서슴없이 던진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받들어 귀감으로 삼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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