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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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고 싶다
  • 윤여문<청운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5.11.2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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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의 시에서 인용한 박완서의 유명한 산문집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의 제목처럼 나는 대체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 버릇이 있다. 교통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기 무섭게 뒤에서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며 출발을 재촉하는 운전자에게 분개하고,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고 매몰차게 엘리베이터 문을 닫아버리는 이웃 주민에게 분개한다. 거나하게 취해 주변 손님은 안중에도 없는 취객의 고성에도 분개하고, 번화한 거리에서 어깨가 부딪혔음에도 사과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분개한다. 배려란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가. 어디를 가든지 분노를 유발하는 자들 투성이니 세상살이란 어쩌면 매일 상처받으며 분개하는 일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분노 유발자들을 싸잡아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과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일컫지만, 사실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 배려심이나 예의, 그리고 교양이라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번은 연배가 한 참 많은 선배와 강남에서 새벽까지 술을 거나하게 마신 적이 있다. 일 년에 한두 번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술을 마셔 며칠 동안 속병을 앓는 경우가 있는데, 선배와 마셨던 날이 그 ‘한두 번 정도’의 한 번 이었다. 후에 들은 뜻밖의 이야기는 술 마신 다음날 그 선배에게 잘 들어갔냐는 안부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배가 나를 예의 없는 후배로 매도했다는 말을 들어 분개한 적이 있다. 내가 예의가 있고 없고는 결국 나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기분 좋게 술 마신 다음날 졸지에 예의 없는 후배가 되었다는 사실이 허탈했다.
바라건대, 지금까지 위에서 설명한 나의 개인적인 분노는 애교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 정도의 분개는 허준의 동의보감까지 찾아보지 않더라도 나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쉽게 안정시킬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이기 때문이다.
굳이 보수와 진보의 성향을 묻는다면 나는 51% 정도 보수의 편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좋게 말해서 51%이지, 정치적인 정체성 없이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표현이겠다. 성인이 된 이후로 맞이한 여섯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네 번을 소위 보수라는 옷을 입은 후보자에게 투표했고, 무수히 많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대략 7할을 보수에게 표를 던져주었으니 나는 극우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소 오른쪽 편에 서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그들은 권력을 얻기만 하면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눈과 귀를 틀어막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니 닥치고 나를 따르라’는 식의 위정자가 되어 기를 쓰면서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회귀하는 것 같아 이를 보고 있는 나는 심히 분개한다. 대체로 자신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거나 잘못된 기대와 욕망이 실망의 모습으로 귀결될 때 그 반작용으로 권위와 강압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지금 우리가 선택한 위정자들이 정확히 그러한 모습인 것 같아 분노를 넘어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권위와 강압에 맛을 들인 정치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나 법안을 올릴 때마다 단골메뉴로 활용하는 OECD에서 자살률, 노인 빈곤률, 청년 실업률을 지난 몇 년 동안 부동의 1위 혹은 상위에 랭크 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그들은 치졸한 정치 논리로 차가운 바다에서 희생된 가여운 어린 영혼들의 죽음을 이용했고, 그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의 단식 농성장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먹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천박한지도 모르는 철면피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했다. 수십 년 전부터 걸려있는 사회통합이라는 구호는 고사하고 보수와 진보, 남과 여, 부자와 빈자, 기독교와 반기독교, 경상도와 전라도 등 그 광기는 아무도 손댈 수 없는 극단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자식을 잘못 기르면 부모가 욕을 먹고 학생을 잘못 가르치면 선생이 욕을 먹는데 이념적 갈등과 지역적 반목으로 병들어가는 우리 사회를 책임지는 정치인은 왜 없는지 분개할 뿐이다. 일찍이 시인 황지우가 말하지 않았던가.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의 머리를 모두 왼쪽으로 기울게 한다고. 나는 배려와 예의, 교양과 상식이 통하는 성숙한 사회에서 내 개인적인 작은 일에만 분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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