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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왕 단종의 무덤 장릉과 청령포
  • 이병헌<여행전문기자>
  • 승인 2015.12.0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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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릉.


우리 역사상 비운의 왕들이 있는데 그 중 단종이 중심에 서 있다고 할 것이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감봉돼 비운의 삶을 살다가 1458년(세조 3) 성삼문 등이 도모한 상왕복위계획이 탄로돼 17세에 사약을 마시고 죽임을 당하고 강물에 버려져야만 했던 단종. 그 단종이 유배돼 머물렀던 곳이 바로 청령포이다.

청령포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한 한 후에 배를 타고 비운의 왕 단종이 머물렀던 청령포로 들어갈 수 있는데 배를 탄 후 5분도 안 걸려서 청령포에 도착할 수 있다. 그 당시에도 단종이 이곳에 머물 때도 나룻배를 타고 밖으로 나와야만 했으니 유배지로는 정말 적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청령포를 휘감는 강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원을 그리며 굽이쳐 흐르고, 앞자락에 거느린 넓은 백사장은 치마를 단정히 두른 듯하다. 서쪽의 깊은 물가에 우뚝 솟아 있는 절벽 경치 또한 빼어나다. 배에서 내리면 소나무 숲이 맞아준다. 소나무들이 짙게 우거져 서늘한 그늘을 만들고 있는 청령포에는 단종이 죽고 난 후에 금표비와 단묘유지비가 남아 단종의 넋을 달래주고 있다. 입구에 안내도가 있지만 데크를 따라서 걸어가면 관람을 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숲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을 걸어가면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2000년 복원된 유배 당시 거처인 단종어가로 이어진다. 단출한 기와집 한 채와 그 아래에는 호위하던 시종들이 사용하던 초가 건물이 복원돼 있다. 거처에는 단종의 모습이 보이고 알현하는 선비의 모습도 보인다. 이곳에는 비각을 볼 수 있는데 그곳에서 단묘유지비를 볼 수 있다. 단종이 머무르던 옛 집터를 기념하기 위해 영조 39년에 세운 것이다. 비 앞면에 (端廟在本府時遺址, 단묘재본부시유지)라고 쓰여져 있는데 단종이 여기 계실 때의 옛터라는 의미이다. 비각 앞에는 길게 누운 자세로 소나무가 한 그루가 있는데 기둥으로 나무를 받쳐둔 것이 이색적이었다.

▲ 단종어소.


앞으로 가다보면 소나무 숲 속에 유난히 우뚝 선 우아한 자태의 소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는데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소나무 가운데 가장 키가 큰 소나무인 ‘관음송’인데 그 자태가 놀랍다. 한참동안 돌아보면서 발길을 옮겼다. 다시 발길을 옮겨 앞으로 가다가 계단을 오르고 잠시 오르니 망향탑이 눈에 들어온다. 망향탑은 청령포 서족 절벽인 육육봉과 노산대에 있는 돌탑으로 어린 단종이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이곳에 올라 한양땅을 그리며 쌓았다는 탑인데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다시 위쪽으로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있는데 탁 트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이 평화롭기만 하다. 이곳에서 내려와서 다시 길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에 노산대가 있는데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감봉돼 청령포로 유배된 후에 해질 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젖었던 곳 이어서 노산대라고 부르는데 작은 바위이고 걸터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내려와서 다시 안쪽으로 가다 보면 비석 하나가 서 있다. 앞면에 ‘(淸冷浦禁標, 청령포금표’)라는 글씨가 쓰여있다. 단종이 죽은 지 270년 뒤에 세워진 이 금표비는,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은 왕이 계시던 곳이므로 뭇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출입금지 푯말인 셈이다.

그가 사약을 받고 죽었을 때 그의 시신이 동강에 버려진 것을 영월의 호장 엄흥도가 몰래 수습해 산자락에 암장했다고 한다. 청령포에서 나와 잠시 자동차로 5분 정도만 가면 장릉이 있다. 1970년 5월 사적 제196호로 지정된 장릉은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무덤이다. 그의 시신이 동강에 버려진 것을 영월의 호장 엄흥도가 몰래 수습해 산자락에 암장했다고 하니 정말 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나는 것 같다. 그가 죽은 후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했고, 1580년 상석과 표석석 그리고 장명등과 망주석 등을 세웠다고 한다. 장릉에 가다보면 입구 우측에 박충원낙촌비각이 있다. 이 비각은 박충원의 충신됨을 알리기 위해 1973년에 세웠다고 한다. 1681년 단종은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 11월 단종으로 추복됐으며, 능호는 장릉으로 정해졌다.

오른쪽 계단을 올라서 5분 정도 걸으면 장릉이 보인다. 장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석물 또한 단출하다. 봉분 앞에 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한 쌍이 서 있으며, 그 아랫단에 사각형 장명등과 문인석과 석마(石馬) 각 한 쌍이 있다. 한참동안 묘를 바라보았다. 다른 왕릉에 비해 왕릉이라고 말하기에 너무 소박할 따름이다.

그래도 중종 이후 조정에서 조심스럽게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묘의 영조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고 선조 때에 김성일과 정철 등의 장계로 영역을 수축하고 돌을 세워 표를 했다고 한다. 숙종 7년에 이르러서야 대군(大君)으로 추봉했고, 1698년 추복(追復)해 묘호를 단종이라 해 종묘에 부묘(附廟)하고 왕으로 봉해 장릉이라 했다.

묘가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제의식이 이루어지는 건물인 정자각이 있고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 우물로 사용됐던 영천이 있다. 또한 단종이 사약을 받고 승하해 강물에 버려지자 시신을 암장한 엄흥도 정자각과 홍살문 그리고 재실과 정자 등이 있다.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연못이 있는데 계절을 맞춰 가면 예쁜 수련과 연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입구 근처에 있는 단종역사관에서 그의 비운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돌아보면서 왕방연의 시조 한 수를 찾았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 울어 발길 예놋다

□ 장릉
주소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전화 : 033-370-2619

□ 청령포
주소 : 지번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
전화 : 1577-0545

□ 여행팁
청령포로 건너가는데 배 삯은 2000원이고 장릉 입장료는 1400원이다. 장릉과 청령포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어디를 먼저 가도 상관은 없지만 두 곳을 함께 돌아보는 것이 좋다. 청령포에 가는 배는 수시로 운행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고 청평포 안에는 데크가 설치돼있어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서강과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을 살펴볼 수 있으니 권한다.

□ 주변관광지
영월에 가면 한반도 지형과 선돌을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장릉에서 30분 정도 가면 선암마을 한반도지형(033-372-6001)이 있는데 한반도 지형을 만날 수 있고, 한반도지형에서 선돌까지 30분 정도 걸린다.

□ 가는 길
홍성 - 홍성I.C - 서해안고속도로 - 평택제천고속도로(104.8km) - 남제천I.C - 북부로 - 한반도 지형(3시간 정도 소요)


이병헌<여행전문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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