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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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인심
  • 권기복
  • 승인 2015.12.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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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인심 다 죽었어.”
“맞아. 옛날 같지 않아.”
“그럼, 그럼!”
현재 50대 이거나 그를 지나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거의 다 동감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다. 어떤 사람들은 정이 있던 예전이 그립다고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꼬질꼬질하게 살던 그 시절은 묻어버리고 싶다고도 한다. 그런 가운데 우리 사회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심’을 말한다. 예전에는 여러 부문에서 인심, 즉 인간끼리의 정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는 미련에 젖어 있다.

그래도 근래까지 남아있는 인심으로 남자들 간에는 ‘술 인심’과 ‘담배 인심’이 대표적이다. 단 돈 100원은 남에게 쉽게 주지 않아도, 기 만 원짜리 술 한 잔은 아까운 줄 모르는 것이 한국 사람이라는 말이 통설일 정도이다. 최근에 담뱃값이 거의 2배 오르면서 담배 인심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은 담배 인심 또한 유효로 판명할 만큼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마 여자들에게는 대표적인 것이 김장 인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장 인심은 여러 면에서 술 인심이나 담배인심하고 상황이 다르다. 우선 모이는 이유부터 차이가 있다. 술, 담배는 모임 이유가 유희에 있다. 만나서 즐기자는데 우선한다. 그런데 김장은 노동의 분담에 있다.

서로 어려운 일을 당함에 있어 그 어려움을 나누자는데 있다. 그 다음에는 목적이 다르다. 술, 담배는 동료나 윗사람과 잘 어울리거나 잘 보이자는데 있다. 김장 나눔은 그나마 김장을 담그지 못한 어려운 사정에 있는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을에서 겨울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김장을 담가왔다. 겨울의 한랭기에 쉽게 먹을 수 없는 채소반찬을 적정한 저장기술을 바탕으로 겨우내 즐길 수 있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가득 담긴 문화유산이다. 이에 따라 김장문화는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 왔다.

김장을 담글 때면 아래윗집 아낙네들이 함께 팔을 걷어붙였고, 남정네들 또한 얻어먹을 것이 없을까 하여 기웃거리곤 했다. 그러다 보면 여지없이 김장 자투리를 버무린 겉절이와 막걸리가 대미를 장식한다. 게다가 돼지 수육이라도 한 접시 삶아낸다면 금상첨화일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김장을 담그면서 부족하게 하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정말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김장만큼은 너나없이 풍족하게 준비하였다. 그리하여 한 겨울에 고구마 한 쪽을 먹을 때에도 김장김치를 쭉 찢어내어 흠씬 얹어서 먹곤 했었다. 이처럼 너나없이 김장은 풍족하게 하다 보니 우리보다 더 있는 집은 생각할 필요가 없고, 그나마 김장조차 담아먹지 못한 이웃들에게 나눔의 정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김장 인심이야말로 당연하게도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쏠리게 되고, 수혜자는 남아서 주는 것이라 하기에 보은의 부담을 별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

이제 추위와 함께 자신 곁에 돈이 없거나 사람이 없는 이들은 정말 쓸쓸한 겨울이 찾아왔다. 이런 때일수록 어렵거나 외로운 사람들 곁에 우리들이 함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김장 인심을 발휘할 때가 아닌가 싶다. 동장군을 훈훈하게 녹여줄 수 있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정일 것이다. 정이야 말로 따뜻한 인심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삭풍이 문풍지에 매달려 요란을 피울 때에도 이웃에서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들 때에는 그리 무섭거나 춥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 김장 못 하셨죠? 우리가 한 통 드릴게요.”
“그 집도 식구가 많아서 한 참 먹을 텐데, 나까지 챙겨주남?”
“걱정 마세요. 충분히 담았어요.”
이웃을 함께 생각하고 넉넉하게 김장을 하던 김장 인심이 우리들의 얼어가는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 주는 모닥불이 되기 바란다.

권기복
<시인·홍주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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