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위대한 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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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위대한 아버지들
  • 윤여문 <청운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6.02.0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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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시절,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와 장거리 연애를 했다. 매달 수십만 원씩 청구되는 국제 전화요금은 차치하고, 간혹 별것 아닌 사소한 일로 다투기라도 하면 장거리 연애의 경우 화해 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얼굴 맞대고 손 한 번 잡으면 별일 없을 일이 전화로는 장황하게 설명해도 오해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아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방학을 이용하여 한국에 돌아와 프러포즈 했고, 아내는 흔쾌히 승낙했다.
신촌에 있는 조용한 한정식 식당에서 아내의 부모님을 처음 만났다. 그날을 위해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양복을 구입했고, 허리춤까지 길렀던 긴 머리를 단정하게 잘랐다. 단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던 양복의 와이셔츠와 넥타이는 갑갑했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십년 만에 처음 경험한 짧은 머리는 부자연스러웠다. 결혼을 전제로 여자 친구의 부모님을 만난다는 것은 '30년간 고이 키운 따님이 저를 사랑하니, 아쉬우시겠지만 제가 데려가겠습니다'를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치 내가 날강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약속장소에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며 거울을 보고 간단한 인사말을 대본 외우듯 연습했다. 시간에 맞추어 아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도착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직폭력배 똘마니가 하늘같은 보스를 만나듯 경직된 얼굴로 90도 인사했다. 지금도 여전한 미모를 뽐내는 장모님은 그때도 다정히 대해주었지만 장인어르신은 굳은 표정으로 악수를 청해 가뜩이나 긴장한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그 날,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였지만 나는 아무 말 없는 장인어르신 때문에 좌불안석이었다.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든 것은 장인어르신의 첫 질문이었다. "그래, 앞으로 인생 청사진은 무엇인가?" 누가 평생을 사업가로 살아온 분이 아니랄까봐 나를 더욱 코너로 밀어붙이는 질문을 하시는지. 내가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지금도 기억에 없다. 마치 깊은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대며 횡설수설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긴장되고 불편했던 기억 중 하나였다.
얼마 전, 초등학생 딸아이가 같은 반의 유찬이라는 남자아이를 좋아한다는 말을 점심식사 중 아내에게 들었다. 나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일단 기분부터 나빴다. 다짜고짜 "어떤 자식이야?"했더니 착하고 예의바른 아이란다. '착하고 예의바른 아이'건 말건 나는 짜증이 밀려왔고, 즉시 식욕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몇 주 후, 학부모 엄마들끼리 저녁 모임이 있어 내가 집에서 애들을 돌볼 일이 생겼는데, 유찬이 엄마가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찮아 내가 함께 데리고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보고 우리 딸내미와 딸내미가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함께 돌보라는 것이다.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8살짜리 아이를 집에 혼자 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마지못해 '그러마' 했다. 
유찬이는 아내의 말처럼 예의바르고 착하고 게다가 잘생겼지만, 나는 초저녁부터 배알이 틀어져 있었다. 딸아이는 유찬이가 온다는 말에 항상 아내와 내 몫이었던 자기 방 청소를 알아서 깨끗이 정리했고, 아끼는 예쁜 옷을 골라 입었다. 부아가 치미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는데 결정적으로 내 딸이 주사위 게임 중 유찬이가 유리하게 규칙을 바꾸는 게 아닌가. 그러니 나는 항상 게임에서 지고, 유찬이는 게임에서 이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완전히 상한 기분으로 게임을 그만두고 서재 방으로 갔으나 그 상실감은 며칠이 지나도록 치유되지 못했다. 
그날 밤, 별의별 생각으로 쉽게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내는 저녁식사에서 맥주 몇 잔 했는지 벌써 골아 떨어졌고, 그 옆에서 나는 등을 맞대고 이런저런 상념에 잠겼다. ‘언젠가 딸아이는 결혼을 할 것이다. 예전에 내 아내가 장인어르신에게 했던 것처럼 내 딸아이가 결혼할 남자를 소개할 것이고, 장인어르신이 그러했듯이 나도 딸아이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서 생판 듣도 보도 못한 놈에게 내 딸을 건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딸을 잃은 상실감에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아플 것인가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15년 전, 아내와 나의 결혼식에서 자신의 소중한 딸을 나에게 건네준 장인어르신의 마을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딸을 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불쌍하고 외롭고 그리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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