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 함성 들려오던 철마산자락 내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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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 함성 들려오던 철마산자락 내기마을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6.03.03 14:2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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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신문- 금마면 죽림리 내기마을
▲ 내기마을 전경.

□내기마을의 유래
철마산 아래 부채꼴로 펼쳐진 내기마을은 조선시대 홍주군 송지곡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기리, 철마리, 백양, 죽림리, 신대리와 홍천면 어경리 각 일부를 병합해 죽림리라 하고 홍성군 금마면에 편입됐다.
죽림리에 관한 내용이 처음 기록에 나타난 것은 1760년에 간행된 ‘여지도서’다. ‘여지도서’에는 홍주의 송지곡면에 내기리와 백양동리가 기록돼 있다. 내기마을은 현재 내기·창굴 마을로 당시 관에서 동쪽으로 15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당시 편호는 22호, 남 51명, 여 48명이었다. 내기마을은 금마면사무소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도를 사이에 두고 화양리와 마주하고 있다. 자연부락명으로 느래, 창굴, 옷밥굴 등의 지명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으며 중심마을인 느래의 위쪽에 터를 잡아야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내기마을의 역사
죽림리 일대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느래마을 북동쪽에 선사시대 석기출토지가 있어 매우 오래전부터 이 주변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2002년 홍성군 발간자료인 ‘문화유적분포지도’에 의하면, 느래마을 북동쪽에 위치한 87.8m의 야산과 북서주한 능선의 남향사면 하단부에 석기 산포지가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현재는 대부분 경작지로 개간돼 원래의 지형이 남아있지 않은 곳이 많지만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이 일대는 전체적으로 완만한 저산성 구릉지대와 임야로 이뤄져 있어 선사시대 관련 유적의 입지로 매우 양호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경작지로 개간하는 과정에서 석촉과 같은 석기가 출토된 예도 있었다고 한다.
내기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전주 이씨들이 세거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뒤로 동래 정씨와 청주 한씨가 입향해 세거해 왔다고 한다.

▲ 메주를 띄워놓은 마을 풍경이 정겹다.

□일제강점기 3·1 만세운동
1919년 4월 2일 홍성시장에 모여든 군중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들은 이러한 행위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했고, 만세운동에 참여한 계층은 대부분 가진 것 없는 일반 평민들이었다. 하지만 독립 만세를 목청껏 외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난 듯 희열과 강렬한 민족애를 느꼈다. 금마면 만세시위운동은 점차 확산돼 4월 4일에는 철마산 정상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됐다. 당시 철마산은 벌거숭이 붉은 산이어서 금마주재소는 물론 멀리 홍성까지 시야가 확보됐다. 일본경찰의 진압 시작 전에 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 헌병과 경찰이 합동으로 조직된 기마병이 출동해 시위자들에게 무차별 발포와 폭행을 자행했다.
당시 홍성시장과 철마산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고 일본경찰에 체포된 내기마을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조희수 △권운교 △이희임 △조덕수 △박응수 △조선수 △손창선 △신태복 △한명원 △한상인 △윤대홍 △오덕화 △장기선 △이흥복 △박관보 △이오정 △양운칠 △강태산 △김정팔 △강춘경 △이용하 △이광헌 △이중선 △이영선 △박성운 △이교천 △이규한 △방화용 △이선림.

▲ 마을 주민들의 신명나는 풍물놀이.

□내기마을의 풍습과 전설
내기마을은 오래전부터 마을공동제사를 지내지 않는 대신 화합과 친목 도모를 위한 대동계를 유지했다. 대동계는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했고, 전입시 쌀 3두를 내고 가입하게 된다. 대동회는 구정을 전후해 개최하고 이장이나 반장을 선출하거나 마을의 발전 계획을 논의한다. 대동회가 끝나면 윷놀이와 풍물놀이를 즐기는데 이날 하루는 주민 전체가 화합을 다지며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새해 풍년을 기원한다. 내기마을은 대동계에서 혼구와 상여를 보관하고 있는데 예전에 혼례와 상례에 공동으로 사용했다.
느래에서 철마산으로 올라가는 중간엔 예로부터 장수바위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 지금은 덤불 속에 가려져 형체를 분간하기 어렵지만 넓은 바위 위에 발자국 모양의 돌이 있었다. 예전에 무예가 출중한 장수가 홍북면 용봉산에서 날아올라 이 바위를 딛고 대흥산으로 갔다고 한다. 즉 장수가 밟았던 바위라 해 장수바위로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발자국을 확인하기 어렵다. 장수바위의 발자국을 떼어내 잘 간직하면 득남하게 된다고 해 누군가 발자국 모양의 돌을 떼어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군수 순방과 마을 대동회
“오늘 군수님이 오신다고 해서 마을 대동회까지 함께 준비했죠. 우리 마을은 뭘 해도 단합이 잘 되고 화목함이 제일인 마을입니다.”
금마면 죽림리 내기마을 이기수(55) 이장의 말이다. 이기수 이장은 현재 금마면 이장협의회 사무국장으로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마을 주민들은 “젊고 똑똑한 이장 덕분에 마을이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김석환 군수는 지난 1월 14일 마을 순방을 진행했는데, 금마면에선 내기마을을 방문했다. 이날 순방에 맞춰 마을 주민들은 각종 먹거리와 풍물 등 마을 대동회를 준비해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흥겨운 풍물 가락에 맞춰 한껏 춤을 추는가 하면, 농기계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는 공간은 한바탕 잔치가 벌어지는 사랑방으로 탈바꿈했다. “역시 우리 내기마을은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만큼 한 마음 한 뜻으로 잘 뭉친다니까.” 한 마을 주민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민들은 지난 1월 초 예로부터 내려오던 대동샘 주변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지붕을 새로 세우는 동시에, 고사를 지내며 한 해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기도 했다. 내기마을 대동샘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샘솟아 예로부터 마을의 기운을 이끄는 중심지로 여겨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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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수 기자 2016-03-11 09:25:12
홍주신문 장윤수 기자입니다. 말씀하신 부분대로 '부락'을 '마을'로 정정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아낌없는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이춘호 2016-03-05 14:53:48
기자님 "부락"이라는 말 뜻을 아시나요 ?
마을, 동네 좋은 우리말이 많은데
그것도 3.1절 기사에
왜 "부락"이라는 글을 쓰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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