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만에 참상 드러낸 보도연맹 학살
상태바
66년만에 참상 드러낸 보도연맹 학살
  • 홍주일보
  • 승인 2016.03.10 14: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6년 만에 홍성지역 국민보도연맹사건 민간인 학살의 참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국민보도연맹이란 1949년 6월 5일 결성된 반공단체다.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 일원 오서산자락 폐광에서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6일까지 진행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은 20∼3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최소 21구의 유해와 21점의 유품이 발견됐다. 발굴단은 두개골에서 M-1소총 탄두가 발견되거나 대퇴부가 총탄에 의해 훼손된 점 등으로 미뤄 이들은 총기류에 의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매장지인 폐광지역은 습도가 높아 유해의 보존 상태는 매우 나쁜 것으로 파악됐다. 발굴된 유골과 함께 유품으로는 탄두, 고무신, 라이터, 단추, 벨트 등이 출토됐으며, 특히 라이터에는 희생자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병규’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발굴단은 유족의 진술과 특징이 비슷한 일부 유해에 대해서는 DNA 검사 등을 통해 정확한 신원을 파악할 예정이다. 한편 오는 26일 발굴된 유해를 용봉산 추모비 인근에 추모공원을 조성, 합동 안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홍성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사죄와 용서, 화해를 상징하는 추모탑을 홍북면 상하리 용봉산 골짜기 비극의 현장에 건립했다. 용봉산 골짜기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실상은 정확히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에서 2005년에 발간한 실태보고서는 7월 12일 경찰과 특무대가 용봉산 골짜기에서 보도연맹원 100여 명을 학살한 것으로 수록돼 있다. 인민군 치하인 8월 20일 결성초등학교 교정에서 인민재판으로 47명 학살, 국군이 들어온 10월초 홍성읍 붉은고개에서 민간치안대원이 30여 명 학살, 10월초 결성면사무소와 지서에서 100여 명이 학살됐다. 그러나 이런 수치는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2009년 7월 홍성군청 희생자 접수창구에 신청한 사람만도 500명이 넘었기 때문이다. 홍성지역 국민보도연맹에 대한 예비검속은 1950년 6월 25일에서 홍성에서 경찰이 철수하기 시작한 7월 11일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보도연맹원으로 가입된 인원은 100여 명 정도로 특무대와 경찰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광천읍에는 인민군 점령기에 부역했다는 혐의로 1950년 10월 8일 담산리 마을에서 민간인이 집단 학살됐다. 오서산과 광천 독배 등 여러 곳에서도 집단 학살이 자행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가해자는 수복 직후 구성된 치안대로 알려졌다.

광천읍 담산리 일대는 광천지서 유치장에 구금됐던 주민 30~60여명이 학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 곳이다. 따라서 홍성지역 보도연맹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와 배상을 포함 발굴지역의 보존과 활용방안, 추모시설 등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이는 또 홍성군의 책임과 의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