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꼰대의 경계
상태바
어른과 꼰대의 경계
  • 윤여문 <청운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6.03.31 13: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기를 먹어야 하는 회식자리에서 나는 어김없이 집게를 들고 기꺼이 고기를 굽는다. 동료 교수들과의 회식에서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교수로 임용된 이유로, 학생들과의 식사자리에서는 강의실을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이유로, 식구들과의 외식에서는 ‘집에서 하던 일을 밖에서까지 할 수 없다’는 아내의 무언의 항의에 내가 직접 고기를 굽는다.
사실, 나는 고기를 잘 굽는다. 이글거리는 숯불에 적당량의 고기를 올려 육즙을 손상시키지 않고 노릇노릇하게 고기를 굽는다. 상추와 마늘을 더해 입에 넣으면 딱 알맞을 크기로 고기를 썰고 김치를 불판에 올려 볶음 김치를 만든다. 고기를 굽는 중에도 상대방이 이야기 하는 주제에 정확히 어울리는 추임새를 넣고 고기가 먹기 좋을 만큼 익으면 각자의 앞접시에 한 점씩 올려놓기도 한다. 폭탄주를 황금비율로 조제하여 쾌활한 목소리로 건배를 외치는 센스도 잊지 않으니 어디서든 ‘소싯적에 고기 좀 구워봤네’ 소리를 듣는다.  
내가 항상 집게를 들고 성심성의껏 고기를 굽는 이유는 동료 교수들에게는 존중을, 학생들에게는 친근함을, 식구들에게는 다정함을 보여주고 싶음이다. 결국 나는 되바라진 동료, 앞뒤 꽉 막힌 교수, 가부장적 아빠의 모습에서 벗어나 ‘당신을 인정하고 호의적이며 더 나아가 존경합니다’를 나타내는 다른 방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른과 꼰대의 경계가 참 모호하다. 어른은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경험하고 거기서 얻은 깨달음과 지혜로 주변인을 보듬는 것에 반해, 꼰대는 고리타분하고 권위적인 자기중심적 생각으로 상대방을 짓누르니 그 다름을 구분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 꼰대라는 단어는 그 쓰임이 오래되어 국어사전에도 엄연히 등재되어 있다. 이 단어는 문학 작품이나 방송에서도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이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주로 “내가 너 때는 말이야…”라거나 “oo는 oo이야”라는 식의 정형화된 공식을 자주 사용한다. 개인 혹은 집단 이익을 위해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고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억지 명분의 옷을 입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열변을 토한다.
모르긴 몰라도, 여러 직업 중 꼰대로 변모될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 것이 교수가 아닐까 싶다. 지속적으로 상대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어떤 사안에서든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해야 하는 동시에 명쾌하고 논리적인 해결책까지 제시해야 하는 직업이니 자칫하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라는 꼰대적 함정에 빠지기 쉽다. 기억나는 일화 중 하나는 내가 교수로 임용되었을 때 마침 30년을 교수로 근무하다가 은퇴한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좋은 말씀 부탁한다”는 나의 청을 한사코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한 충고는 “타인의 전공에 이러쿵저러쿵 아는 척하지 말라”는 뜻밖의 말이었으니 교수가 오지랖 넓은 꼰대가 될 가능성은 정말 높은 것 같다.
내가 몸담고 있는 실용음악과의 교과과정에 ‘전공레슨’이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교수와 전공학생이 1:1로 수업을 하는 것으로 학생은 보다 집중적이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수업이다. 음악 기초가 부족하고 경험이 전무한 신입생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이 수업에서 매년 반복되는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는데, 그 중 하나는 학생들의 작품이 기존의 음악적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창의력은 음악이 예술로 변모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정의할 때, 학생들의 곡은 형식이나 구조가 지나치게 전통적인 방법에 묶여 있는 느낌이다. 정형화된 가정과 학교, 그리고 학원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은 병폐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학생의 문제점을 미리 지적하기보다는 무수히 많은 질문으로 학생 스스로 자신의 약점을 알아차릴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다.
나는 사회에 만연된 꼰대들의 생각이 각자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 즉 창의력을 박탈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구성원들은 행복감 대신 필요이상의 의무감과 책임감이라는 경직성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나와 다름이 인정되고 상대방의 자유로운 생각이 존중되는 성숙한 사회는 꼰대적인 사고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 사회에 쓸데없는 오지랖보다 자상하고 따뜻한 관심을 갖는 어른들이 많기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홍성군 인사발령 〈2020년 7월 1일자〉
  • 38선을 넘다
  •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홍북초등학교, 내포신도시로 이전 확정
  • 충남혁신도시 입지 ‘내포신도시’ 공식화
  • [속보] 홍성군의회 이병국 부의장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