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반 아이들은~컨닝 안 해요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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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반 아이들은~컨닝 안 해요 <83>
  • 한지윤
  • 승인 2016.04.0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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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 라이트, 툭, 잽, 스트라이크, 업어치기, 라이트 스트라이커, 윙 플레이, 올라운드 플레이, 몸싸움, 스매싱, 타점 높은 강스파이크, 쿵후, 이소룡 권법을 물려받은 현대판 신종권법 등등. 신중이는 아직 겉돌기만 했다. 먼지가 펄펄 일어났다. 발소리 손 소리, 어깨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악, 윽, 어~맛! 등등의 괴성과 기합소리, 비명소리 등이 난무하는 가운데 격전이 계속되었다.
제1라운드를 끝내는 공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국제경기의 규정을 완전히 무시한 대결이다. 게임시작 공이 울린 지 30분도 훨씬 지났다. 죽을 때까지 공은 울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드디어 호동이도 기진맥진. 쌩쌩한 것은 신중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녀석은 나비처럼 날기만 했지 벌처럼 쏘지 않다 보니 기운이 빠질 리 없었다.
바로 그때. 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두 녀석이 호동이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면 호동이는 넙치가 될게 뻔했다. 보다 못한 수연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신중아! 뭐~해애!"
신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빨리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재빨리 깜짝 놀랐다.
‘그래, 나도 남자다! 한번 죽지 두 번 죽겠냐. 에라이 썅!’
그 다음 순간.
롱 패스인가 롱 드리 볼인가. 과감한 300미터 태클인가,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동시에 호박 같이 생긴 럭비 볼은 이미 신중이의 두 손 안에 있었다. 아니, 럭비볼이 아니다. 신중이 죽을둥살둥 움켜잡고 있는 것은 한 녀석의 고린내 나는 발이다. 보트만큼이나 컸다. 신중이는 냅다 잡아당겼다.
"어어, 어, 어!"
당연한 일이다. 발이 붙잡힌 녀석은 갑자기 반벙어리가 된듯이 어어를 연발하더니 그대로 바나나 껍질을 타고 말았다. 신중이 잽싼 동작으로 녀석이 배에 올라탔다.
이어서 막 팔운동을 하려는 순간.
"아우!"
신중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밑에 깔린 녀석의 구두 끝이 그의 뒤통수를 내질렀기 때문이다. 녀석은 소림사에 가서 최소한 변소청소 정도는 하고 온 출신이 분명했다. 색골 같은 녀석이 소림사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상황은 금방 뒤바뀌어 신중이 밑에 깔렸다. 이번에는 녀석의 차돌주먹이 신중이의 턱을 날려 최소한 골절상은 이빌 것이다.
수연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사태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그녀가 아닌가.
"보자야!"
수연이 소리치가 보자는 금방 알아차렸다.
"아, 알았어!"
눈치 한번 기똥차게 빠른 보자였다. 둘이 약속도 하지 않고 시나리오도 없었는데, 거의 동시에 척척 움직였다. 신고 있던 것을 한 짝씩 벗었다. 보자는 운동화, 수연이는 구두를 각각 한 짝씩 잡았다. 우렁찬 진군의 나팔소리가 소리 없이 울리고 북소리가 주위를 진동시켰다.
짜자자 짠!
달려간 수연과 보자는 꼬나잡은 운동화와 구두로 도리깨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특히 수연의 구두 짝 위력은 대단했다. 신중을 깔고 앉은 녀석이 천하장사라도 할 수 없다. 콩볶아대듯 쏟아져 내리는 운동화 짝과 구두 짝 매에 당할 재간이 없었다. 눈, 콧등, 정수리, 뒷통수, 귓바퀴, 속눈썹 등 가리지 않고 퍼부어대는 바람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였다.
"수연아!"
이번에는 보자가 씩씩대며 호동이 쪽을 가리켰다.
호동이는 두 녀석한테 붙들려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냥 두면 거기서 밥 숫갈을 놓게 될 위기의 순간이다.
"알았어!"
십자군의 돌격대가 진로를 바꾸었다. 짠짜라 짠. 우렁찬 말발굽, 아니 한쪽은 짝 잃은 운동화, 다른 쪽은 구두의 발소리가 이내 호동이 쪽을 향해 달려갔다.
이어 후다다닥 훅 탁툭타닥 정신없이 도리깨질이 퍼부어졌다. 사태는 금방 역전되었다. 호동이를 공격하던 두 녀석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며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공교롭게도 수연이의 구두 굽에 사타구니를 강타당한 녀석은 두 손으로 고추를 움켜잡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수연이는 자신이 녀석의 종자 밭을 짓뭉갰는지 뭔지 까맣게 몰랐다. 버둥대는 그 모습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못생긴 얼굴이어서 아주 볼만했다.
그 틈에 벌떡 일어난 호동이가 전력을 재정비해서 공격을 하려던 직전이었다.
그때.
"아휴!"
신중이 비명소리를 토해냈다.
"아구아구!"
금방 숨넘어가는 소리에 수연이 다시 소리쳤다.
"보자야!"
"알았어!"
수연과 보자는 재빨리 말머리가 아닌 발머리를 돌렸다. 개구리처럼 쭉 뻗은 신중이 무자비하게 얻어터지고 있는 중이었다. 여지없이 도리깨질의 난타. 운동화 짝은 물론 구두 짝까지 다 떨어져서 돌아갈 때는 수연도 보자도 한쪽만 신고 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얼마나 패댔을까.
거기다 기운을 되찾은 호동이가 몇 차례 돌아가면서 패대기 질을 친 다음이었다. 세 녀석의  무엇무엇 같은 자들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당할 수가 없었다.
"안되겠다!"
"튀자!"
녀석들은 똥마려운 강아지 꼴이었다. 두 손으로 엉덩이를 움켜잡은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매우 불리하던 상황에서 여자들의 도리째길이 가세하여 전세를 뒤엎고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로 멋진 승리를 거머쥔 셈이다. 호동은 마지막으로 풀밭에 푹 고꾸라진 녀석의 엉덩짝을 냅다 걷어찼다.
"엄마야!"
죽는 시늉을 하면서 꽁지야 나 좀 살려주면 안 잡아 먹지, 하고 도망친 녀석은 넷 가운데 똘만이 임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수연이 먼저 그 자리에 무너지듯 털썩 주저앉으며 두 다리를 쩍 벌리며 뻗었다. 기진맥진이다. 뒤를 이어 보자가 그 곁에 주저앉으면서 아직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신중이는 선 채로 수연을 바라보았다. 호동이는 똘만이 녀석이 도망친 쪽을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 보자가 먼저 그 침묵을 깼다.
"한바탕 운동을 했더니 배에서 쪼르륵 한다야."
이때만큼은 그러는 보자에 대한 수연이도 침묵을 지켰다. 할 말이 없는 그녀였다. 갑자기 보자가, "모든 게 너 때문이야, 계집애야!"하고 쏘아 붙였을 때도 역시 변명하지 못했다.
"나도 알아."
"오히려 얌전히 수긍하며 고개를 숙였다. 수연의 생애에 최초로 다가온 굴욕적인 분위기였다."
"뭣 땜에 엉뚱한 길로 빠져서 이 지경을 만드니?"
"알고 있다니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일행 중에 수연이를 옹호하고 나선 것은 역시 신중이 뿐이다.
"너무 몰아세우지 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
"그나저나 어쩌지?"
문득 말한 보자가 호동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한쪽 눈은 완전히 시프르 둥둥한 밤 탱이가 되어 보기에도 끔찍했다.
"괜찮아, 이쯤은."
"많이 아프지?"
"약간."
"어디 봐."
호동이는 우거지상이 되었다. 아프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대장부 체면 때문에 여자 친구 앞에서 사실 그대로 아프달 수는 없는 문제였다.
"어쩜 좋아, 남들이 보면 놀려댈 텐데?"
"걱정할 거 없어."
"정말 괜찮은 거야, 너?"
"앞으론 군대에 나가 고된 훈련도 받을 텐데 이 정도야 보통이지."
"난 놀랬어."
"뭐라고?"
"넌 너무너무 용감했어, 호동아 멋져!……"
"뭘 그 정도로……"
호동이는 아프면서도 몹시 흐뭇한 미소를 보자에게 보냈다.수연이는 은근히 부러운 눈빛이 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비록 마지막에는 용감하게 싸웠다 해도 그렇다, 호동이에 비해 신중의 행동은 창피스럽기만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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