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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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6>
  • 한지윤
  • 승인 2016.04.2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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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큰 사건이 아니긴 햇지만 시경찰국 본부나 시내 전역을 누비고 있는 모든 패트롤 카에서 여자대학교에 나타난 치한이 오보 신고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한순간 긴장 속에서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8명의 경찰들은 모두 차에 올라탔고, 모든 학생들은 손을 흔들어주었다.
패트롤 카가 막 움직이려고 하자 소영이는 차로 달려가 차장에 키스라도 하는듯한 태도로 조용히 말했다.
"잘 부탁해요!"
소영이는 조금 전 자기가 내던졌던 젊은 경찰관에게 생긋이 웃어보였다.
"거짓말장이 여자대학생이 장난치려고 '이리떼가 나왔어요'하고 112다이얼을 걸어 놀라게 한 건 아니니까요, 앞으로도 또 무슨 일이 있을 때 부르면 꼭 다시 와 주셔야 돼요!"
"좋아요! 언제든지……"
젊은 경찰관은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패트롤 카가 떠나 버린 뒤 캠퍼스에는 세 가지 닉네임이 남겨졌다.
하나는 한연주 교수에게 붙여진 '농축 우라늄'과 또 하나는 프로포즈를 한 원자력연구소의 과학자라고 하는 나현수 교수라는 남자에게 붙은 '가이거 카운터'라는 별명이었다.
둥그스름한 얼굴의 한연주 교수는 어딘지 모르게 농축 우라늄이라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처녀교수의 연인은 키가 큰 장다리였기에 가이거라는 말이 적합한 남성적인 이미지와 비슷했던 것이다.
가이거가 농축 우라늄을 들이마셨는지, 농축우라늄이 가이거를 끌어들였는지, 이 점에 대해서는 한연주 교수가 그녀의 전공인 수학으로 풀어보아야 할 일이라고 학생들은 입방아를 찧었다.
 또 한가지 별명은 이 사건으로 인해 기숙사 학생들과 캠퍼스 전체에 소문으로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게 된 소영이에게 붙여진 '캠퍼스 588'이라는 닉네임이었다. 그것은 오피스 588번이나 비지니스 588번이나 아가씨 588번 따위가 아니었다.
블루진과 티셔츠에 잘 어울리는 구김살 없이 뻗어 나간 여대생, 그것은 바로 캠퍼스 588번의 옆 모습이었다.

오늘은 함께 즐기는 거야!
어느 날 소영이는 써클에서 알게 된 어느 남자의 생일파티에 초청을 받았다. 그녀는 축하연이 열리는 강남의 한 나이트클럽에 나가려던 참에 서둘러 댄 나머지 그만 판단력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대문 밖을 막 나섰을 때 달려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불빛을 보고 택시로 착각하고선 손을 흔들어 버린 것은 변명할 여지 없는 불찰이었다. 소영이는 내가 너무 긴장했구나 생각하며 별수없이 일부러 엉뚱한 곳을 쳐다보면서 어서 빨리 그 자가용이 지나가주었으면 하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그러나 자동차는 타이어의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소영이의 바로 앞에 급정거했다. 주위는 이미 어둠이 깔려 어두컴컴했다. 자동차는 노란색 벤츠였고 안에 타고 있던 낯선 사내가 유리창을 내리고 검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소영이에게 미소를 보내왔다. 파이프 담배의 냄새가 열린 차창으로부터 흘러나와 소영이의 후각을 자극했다.
그녀는 난처한 궁지에 몰렸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내의 얼굴은 그러나 생소하지가 않았다. 꼭 영화배우 클라크 케이블을 젊게 만들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소영이가 숨을 죽이고 물끄러미 사나이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는 약간 사투리가 섞인 억양으로 말했다.
 "어디로 가시죠, 아가씨?"
 "저어……괜찮아요. 전 택시로 착각을 했어요."
 "착각을 하셨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눈꼬리의 주름살까지도 클라크케이블을 닮았다.
 혼혈의 남자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그렇지 않은 것도 같았다. 일이 이렇게 되면 각오를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소영이는 생각했다.
 "자연농원까지 가는데요."
 "타시죠. 저도 자연농원까지 갑니다."
 사나이가 자기도 자연농원까지 간다고 한 것은 분명 엉큼한 수작이라고 소영이는 단정했다. 소영이는 의아한 듯한 눈매로 상대를 쳐다봤다. 그러자 눈썹끝이 아래로 쳐진 팔자 비슷한 눈썹의 한쪽을 찡긋해 보이며 사나이는 장난스럽게 윙크를 보내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소영이의 머리 속은 번갯불처럼 어떤 최악의 사태가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다. 유괴·폭력·강간·살해 등……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영이는 눈썹을 치켜 세웠다.
 그러나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살아갈 재미가 없다. 지금은 몇십년 전의 여자처럼 쉽사리 만만한 녀석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 세대다.
 소영이는 차 도어가 열려진 반대쪽으로 가 클라크 케이블 옆 자리에 앉았다. 상대는 대어라도 낚은 듯 싱글벙글 마냥 웃고 있었다. 아니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농원으로 가기 전에 드라이브라도 하시죠?" 그가 드디어 수작을 걸어왔다.
 "안 되겠는데요, 좀 바빠서……그리고 어느 분 생일 파티에 참석해야 해요."
 "그래요?"
사나이는 뜻밖에도 순순하게 자연농원으로 가기 위해 차를 국도로 우회전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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