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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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9>
  • 한지윤
  • 승인 2016.05.1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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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저 부근에서 내려주세요."
"안 내려 줄 거야. 지난번 내가 말한 약속이 있잖아……"
소영이는 어떻게 해서든 이 벤츠에서 도망칠 방법을 강구해내지 않으면 안될거라고 생각했다.
"별 볼일없는 넥타이를 매고 계시네요. 저하고 함께 데이트하고 싶으시면 세련된 걸로 하나 새로 사지 않으면 안되겠어요."
이 말에 케이블은 웃으면서 노란색 넥타이를 망설이지도 않고 목에서 풀어내더니 차창밖으로 서슴없이 휙 내던져버렸다. 넥타이는 일요일의 한산한 아스팔트 위에 선명한 색상을 드러내며 펼쳐졌다. 어딘가 화끈한 태도가 그럴듯했다. 소영이는 문득 넥타이가 없어진 사나이의 옷깃에 그 어떤 친숙감을 느꼈다.
"넥타이를 풀어 없애버리니까, 어때. 괜찮아? 이제부터 민속촌으로 가는거야. 저번에 내가 한 말 그 약속을 지키고 싶은데……"
 이미 해는 기울어져있었다. 케이블은 석양을 향해 차를 몰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얼굴이 석양에 비추어 더욱 더 검붉고 건강해보였다.
 소영이는 아무 말 없이 옆 자리에 앉아 있다가 남자의 웃저고리 포켓에서 영자신문을 빼내어 소리 높여 읽기 시작했으므로 케이블은 크게 웃었다. 소영이가 신문읽기를 다 끝내고 창밖을 내다보니 벌써 수원근처에 와 있었다.
소영이는 사내에게 담배를 청했다.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고 저번에 말했었잖나?"
"그렇지만 때때로 한 대 피우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사내는 라이터를 켜 담배불을 붙여주었다. 그녀는 담배에 익숙해있지 않았으므로 담배불은 곧 꺼져버렸다. 소영이는 라이터를 빌려달라고해서 다시 불을 붙이고는 라이터를 돌려주지 않은채 손안에 쥐고 주물럭거렸다.
"오늘 밤은 수원의 호텔에서 묵고, 내일 밤 민속촌이나 자연농원의 호텔에서 노름판이 벌어지니까 함께 가자구……"
사내는 손 안에 땡이라도 쥔 듯이 기분이 잔뜩 들떠있었다. 그 말에 소영이는 단호히 말했다.
"호텔에 가는 건 싫어!여기서 내려 줘!"
그러나 차는 수원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떻든 오늘은 호텔로 가는 거야."
"안 돼! 만약 강제로 끌고 가겠다면 차문을 열고 뛰쳐나가는수밖에 없지."
사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재수없게도 차는 네거리의 신호등이 청색이어서 그대로 곧장미끄러져갔다. 그 다음 네거리에 이르렀을때도 신호등은 파란불을 켜고 있었다. 수원 시내를 벗어나게 되면 이 차가 신호등에 걸려 잠시라도 정거하게 될 수는 있는 네거리는 없다.
"소영씨, 오늘은 함께 즐기는 거야!"
잠자코 있어도 웃고 있는 것처럼 이 사내의 얼굴이 지금은 마치 짐승처럼 무서워보였다.
케이블은 한 손으로 운전하며 커다란 손으로 소영이를 끌어당겨 안으려고 대들었다. 소영이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얌전하게 어깨만을 사내쪽으로 기대는 것처럼 했다. 그리고 소영이는 한순간 번개같이 생각했다.
소영이는 초음속 제트 조종사를 존경한 적이 있었다. 초음속 제트기에서는 1초를 다시 몇 분의 일인가로 쪼개는 극한 찰라적인 순간의 신속성과 상황판단이 생사의 정확성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초음속 제트 조정사의 민첩하고 용의주도한 판단력을 동경해왔던 것이다. 그것은 1초를 다시 쪼갠 시간성과 한정된 공간성의 상황 아래서 극히 정확한 인간의 능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생을 찬란하게 살기 위해서는 초음속 파일럿과 같은 능력을 소유하기를 소영이 자신이 갈망해 온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신속성과 정확성의 판별을 소유한 유능자는 천명 중에 한 사람 꼴의 비율이라는 사실을 알았으 ㄹ때 소영이는 더욱더 그 한 사람을 동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을 포착하는 민첩성이 그녀는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판단의 정확성과 신속성이 요구되는 것은 비단 초음속 조정사의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현대를 사는 모든 인간에게 다 필요한 것이며 그리고 더우기 여자들에게도…… 그 찰나를 놓치면 때로는 영원히 파멸에 이르는 것이다.
벤츠 차는 스피드를 더하며 질주하고 있었다. 소영이는 순간 신문을 둥글게 말아 초음속제트기 조종사처럼 재빠른 동작으로 손에 쥐고 있던 라이터를 켜 신문에 불을 붙였다.
"소영이, 뭘하는 거야!"
케이블이 다급하게 외치기가 무섭게 소영이는 불이 붙어가는 신문을 뒷자석으로 내던졌다. 신문지에 타오르는 불은 시트위에서 훨훨 타오르며 연기를 뿜었고 그런 가운데 소영이는 태연자약하게 케이블에게 속삭였다.
"이 벤츠 차 따윈 타버려도 좋으니까 나 키스해 주세요. 지금……"
 그러나 벤츠의 네 바퀴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면서 멈추었다. 케이블은 허둥지둥 차에서 뛰어내려 차 바닥에 깔아 놓았던 고무 매트를 나꿔채듯 끌어내 시트에 타오르는 불을 두들겨 끄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소영이는 초음속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탈출해 달아났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 타고, 놀라서 토끼눈이 되어 쳐다보고 있는 운전사에게,
"서울까지! 어서 빨리 가세요!"
하고 외쳤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지 석 달쯤 지났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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