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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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3>
  • 한지윤
  • 승인 2016.06.09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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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아아뇨. 테니스를…….”
소영이는 태연스러운 얼굴로 대답했고, 그 말에 사나이는 히죽이 웃었다.
“성북역에 도착하면 함께 차라도 한 잔 합시다.”
사나이는 벌써 아베크 기분에 입맛을 다셨다. 소영이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노동자 타입의 사나이가 일어나 내려가 버리자 이 때다 싶게 그는 자리를 소영이 곁으로 바싹 옮겨 앉았다.
‘학교에? 아니면 직장에?“
“학교같은 것 귀찮아요. 여자들 뿐인 곳에……”
나교수의 손이 소영이의 억깨를 걸쳤다. 소영이는 눈을 흘기며 바퀴벌레라도 쥐듯이 오른손으로 그의 팔을 내렸다. 그는 다시 씨익 웃었다.
“어디에서 살지?”
그의 말솜씨의 템포는 빨리도 친숙해 지려는 투다,
“관악산 부근요,”
소영이의 학교 경성여자대학교는 관악산의 관악에 위치하고 있었다.
“관악산? 촌스러운 냄새가 나는 곳이군, 그래.”
나교수의 입에서 약간의 알콜 냄새가 풍겨 왔다,
성북역에 도착했을 때 나교수는 소영이의 가방을 들어 주었다. 마치 인상이 고약한 하역꾼과 흡사하게도.
“잠깐 맡기기로 할까? 이렇게 짐이 있어서야 어디 그대와 손을 잡을 수도 없잖아?”
나교수는 가방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두 사람이 개찰구를 나섰을 때 나교수의 어깨를 뒤에서 탁 치는 사람이 있었다. 검은 베레모에 검정 바지, 갈색으로 물들인 길다란 머리카락을 투명 비닐 반코트의 어깨 뒤로 늘어뜨린 아가씨가 입을 비죽거리며 서 있지를 않는가.
“아니, 네가…….”
나교수는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 같았다,
“누구죠? 이 여자……”
“음……좀 아는 사이지,”
나교수는 겸연쩍게 대답했다.
“아는 사이는, 아는 사이긴 하지만 한 시간쯤 전에 기차 안에서 알게 되었지요.”
소영이는 그 베레모의 여자에게 선뜻 말을 건넸다. 그리고 소영이는 이 여자가 나대수 교수의 수호신인 아방가르드 여대생이라는 사실을 이내 간파할 수 있었다.
“또 생판 알지도 못하는 여대생한테 손을 뻗쳤군요?”
“아냐, 무슨 소리를……잠자코 있어,”
나교수는 소화물 위탁소 쪽으로 걸어가며 부정했다, 소영이는 자신의 가방을 일체 위탁소에 맞기지 않았다,
“군소리 그만하고 셋이서 한 잔 하러 가지!”
사나이는 어느 새 박애주의자처럼 보였다.
“마시러 가요? 마시러 가기 전에 내게 뭔가 좀 먹여 주시죠. 입에 댄 것이라곤 진종일 커피하고 담배밖엔 없는 걸요.”
느닷없이 이상한 관계가 되어버린 세 사람은 부슬부슬 비가 흩뿌리는 거리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음식점을 찾아 갔다.
나교수는 차 안에서도 능글맞게 두 여자의 어깨를 싸안고 혼자 희열감에 젖어 있었다, 음식점에서도 두 여자는 나교수를 가운데 두고 앉았다, 나교수는 막무가내로 그렇게 앉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영이는 빗자루와 같은 머리를 하고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서둘러 주문한 김밥을 정신없이 먹어 치우고 있는 아방가르드에게 웬지 모르게 호기심이 갔다.
“그렇게 늘 돈이 없는 거예요?”
소영이가 상대방 여자에게 물었다.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있는 건 몽땅 이 분한테 빌려 드렸는걸요. 남은 것이라곤 커피하고 담배 뿐 인걸요.”
아방가르드는 악의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나도 용돈으로 고통을 받은 적이 있죠……”
두 여자는 목을 빼어 늘어뜨리고 서로들 재잘거려댔다, 그 사이에 나교수는 두 여자의 어깨나 허리를 번갈아 가면서 건드리며 그 접촉감각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죠?”
김밥을 어느 정도 주워 먹고 허기진 배가 불러오자 아방가르드는 별안간 소영이에게 적의를 보여 오기 시작했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죠?”
“나는 이 남자의 신세를 지고 있는 여자예요. 이 사람은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못된 남자라구요. 당신도 몸조심 하는게 좋을 거야. 비열하고 능글맞고, 의심많고, 배신투성이고……
하기야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다지 A학점 인간은 아니지만서도……“
아방가르드는 이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그만 두라구. 나 때문에 울거나 싸움을 해서는 안돼지……”
제법 술기운이 돈 나교수는 득의양양하게 기분이 절정이었다.
“운다고 해서 당신을 동정하거나 양보하지는 않을 거예요.”
소영이도 어느 새 오기가 발동했다. 절반쯤은 기대하는 바도 있긴 했지만…… 절반은 느닷없이 진심이기도 했다. 이 도전적인 소영의 태도는 아방가르드를 자극했다. 그녀는 울음을 씻은 듯이 그치더니 소영이를 노려보았다.
“눈으로는 울어도 속으로는 울지 않아요,”
“좋아, 좋았어. 이제 알았어, 서로 질투로 싸워선 안 돼, 자, 이제부터 어디로든 가자구, 둘 다 사랑한다!”
“돈도 없는 주제에 뭐 재벌 같은 소릴 하시네요,”
아방가르드는 버들눈썹을 곧추 세웠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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