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8>
상태바
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18>
  • 한지윤
  • 승인 2016.07.14 1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그리고 느꼈다. 그것은 병원 특유의 약내음과 결핵균의 맛을 지닌 기묘한 키스라는 것을.
“네가 있다는 사실, 내겐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 줄 넌 잘 모를 거다……”
유일호는 마치 헛소리라도 하듯이, 소영이의 다소 느러뜨려진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달빛을 받아 유일호의 야윈 얼굴은 마치 귀신처럼 보였다. 소영이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요양소 안에서 살아가는 유일호에게 소영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처절한 병고와 대결 할 수가 있다면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소영이는 조심스럽게 그 영광스러움을 마음 속으로 어루만져 보았다. 그러나 소영이의 마음은 동시에 유일호를 냉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좋아하는 척 해준다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다시 그녀의 악마적인 마음은 언젠가는 그 무엇에 대해 복수하게 될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건강해진다면 나와 결혼해 줄 거지?”
“어서 건강해져야지. 그리고 그런 얘기는……”
“하긴 아직은 계단만 올라가도 숨이 차오르긴 하지. 언제 건강해서 마음 놓고 달릴 수 있게 될까……까마득한 어느 날일까”
그들은 다시 한번 긴 키스를 했다. 어느 누구도 지금 이 모습은 보지 않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쉬워 하는 듯한 눈치인 유일호를 떠밀듯이 하고 소영이가 정문 쪽으로 달려 갔을 때 뒤에서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저어……”
소영이가 멈춰 뒤돌아 보니 그 곳에는 세 명의 흰 옷 차림을 한 간호사가 나란히 서있었다. 간호학교의 학생인 듯 보이는 앳된 소녀의 모습이었다.
“무슨 일로……”
“저어……방금 유일호씨하고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 간호사가 말하자 다른 두 간호사는 히죽히죽 웃었다.
“얘,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어느 하나가 옷소매를 끌어 당겼다.
“괜찮아! 뭐 어때?”
소영이에게 말을 건 간호사가 친구들의 손을 뿌리쳤다.
“어느 분이 먼저 키스를 하셨는지요?”
다른 두 아가씨가 또 킥킥대고 터질듯한 웃음을 손으로 막으며 웃었다.
“키스라는 건 두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것 아녜요?”
소영이는 반문을 했다.
인상이 좋아 보이는 간호사가 킬킬 웃는다.
나머지 두 간호사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어느 쪽에서 먼저 시도를 했는가 하는 뜻이예요.”
한 간호사가 설명투로 다시 말했다.
“그거야 유일호씨 쪽이죠. 왜요?”
소영이가 대답했다.
“어머 멋있어. 그럼 좋아요?”
인상 좋은 간호사가 무심코 엉겁결에 내뱉자, 다른 두 간호사가 무슨 커다란 비밀이나 털어 놓는 듯이 말했다.
우리들은 당신의 머리가 점점 길어져 가고 있는 걸 즐기고 있었던 걸요.“
“그런데, 왜 그러죠?”
소영이가 물었다.
유일호씨는 말이죠, 자기 자신이 요구해서 당신이 머리를 기르고 있다고 소문을 퍼뜨렸죠.“
소영이는 눈썹을 치켜 세웠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당신들 말이지, 간호사이면서도 뭐가 뭔지 아무 것도 모르는군그래. 머리털 정도야, 물을 주고 햇볕만 쬐면 얼마든지 자라난다는걸.……”
세 간호사가 배를 움켜 쥐고 웃어 제끼며서 밤길을 뒷걸음질쳐 뒤돌아 달려가 버렸을 때, 소영이는 비로소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름이 다 끝나갈 무렵, 소영이는 유일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퇴원을 할 것 같다는 편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그 전에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덧붙이고 있었다.
소영이가 요양소를 방문했을 때, 가을은 짙어진 바다 빛깔로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소영이의 머리는 묶어 올려 부풀게 만들면 어느 정도 틀어 올릴 수 있을 만큼 되어 있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유일호에 대해서 얼마간 원망과 사랑이 아닌 깊은 인간적인 친밀감을 품고서 지금까지 교제가 계속되어 온 것을 소영이는 회상해 보았다. 자신은 이 머리 좋은 남자에게, 좋고 싫고는 젖혀 두고 건강으로나 정신적으로 잘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적어도 돈으로써 도움이 되지 않는 이상, 비록 적으나마 마음만으로라도 그렇게 행동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성으로서의 그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고 없었다.
차라리 어느 쪽인가 하면 소영이는 오래 전부터 유일호가 싫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를 살리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심리일 것이라고 소영이는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했던 말 생각해 봤어?”
유일호가 물었다.
“무슨 얘기지?”
소영이는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척 했다.
“너하고 언젠가 결혼하게 된다면, 했던 이야기……”
“안 돼.”
“뭐?”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