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식이 너무 많아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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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식이 너무 많아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야”
  • 이용진 기자
  • 승인 2008.07.3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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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 백양화원 최동출 사장

“3~5만원짜리를 먼 곳까지 배달하면
남는것이 없지만 그 꽃을 받고 즐거워 할 누군가가 있기에 힘들지 않다”

“하우스를 한 바퀴 돌며 나무 손질을 해주고 나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한 그루 한 그루 소중하지 않고 예쁘지 않은 나무가 없다”
홍성읍 오관리에 있는 백양화원 최동출 사장의 첫 마디다. 어린 나무를 사다가 분갈이를 해주고 정성껏 물을 줘 커가는 나무를 보면 자식 같은 생각이 든다는 최동출 사장. 그는 나무를 ‘애’라고 표현한다. 마치 어린 아이 다루듯  나무를 대하는 최사장은 이제 1년 후면 나이가 60 줄에 들어선다며 남은 여생을 이 애들과 보내고 싶다고 한다. 최동출 사장에게 있어 나무란 자식이었다. 무더운 여름 하우스에서 땀을 흘리며 자식 키우기에 여념 없는 최동출 사장과 만나 나무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향기를 맡아 보았다.

▲30년 넘게 나무와 함께 해온 인생
“타 지역은 졸업, 개업 등 축하꽃을 주문할 때 무조건 크고 싼 것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홍성은 금액보다는 작더라도 되도록 예쁘고 실용적인 꽃을 찾는다. 홍성군민들은 수준이 높다”고 말하며 홍성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최동출 사장은 인생의 반을 홍성에서 살았기 때문에 제 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예산 삽교 출신으로 서울에서 정원관리 사업을 하다가 34년 전 고향으로 내려와 조경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28년 전에 명동골목에 화원을 차렸고 25년 동안 그 자리에서 터주대감이었다. 이후 조양문 앞으로 2년 전 자리를 옮겨 아내가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최동출 사장은 작년 11월 오관리 외곽에 조용한 터를 잡아 직접 하우스를 지었다. 그동안 화원을 하면서 비좁았기 때문에 큰 나무들은 키우지 못했던 게 항상 아쉬웠다고 한다.
개업 당시의 상황에 대해 묻자 “사실 홍성은 꽃문화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28년 전 개업 당시만 해도 꽃집이 3~4개 정도 있었고 화환 주문이 조금은 있었으나 꽃의 수요가 거의 없었고 꽃을 선물한다는 것은 인식조차 없었다. 그땐 화환도 조화로 보내는 경우가 많았고 특정인을 상대로만 장사가 됐기 때문에 꽃집 운영은 정말 힘들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무 키우는 일이 천직
나무는 사람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어 준다.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면 자연을 찾는 이치와 같다. 나무를 키우면서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다는 최동출 사장. 나무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노라면 인생의 시름도 잊는다고 한다. “처음 개업을 하고 수년 동안은 나무 키우는 일을 일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나무를 봐도 아무 감정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직접 키운 나무를 쳐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흐뭇하고 편안해진다. 또 애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 특히 팬다 같은 경우는 사올 때 잎이 없이 줄기만 사오는데 잎이 한 장 두장 늘어날 때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급했던 성격이 느긋해지고 기다리는 여유를 갖게 됐다면서 나무 키우는 자랑에 시간가는줄 몰랐다.
“나무에서 인생을 배운다. 나무는 뜻하는 대로 하루아침에 커 주질 않는다. 땀과 열정을 쏟은 만큼 자라게 되어 있다. 나무는 정직하다”며 다시 하우스로 들어가 작업을 하기 시작하는 최동출 사장의 뒷모습에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 예전같지 않다며 아내가 너무 고생이 많다고 했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사실 전화 한통으로 꽃은 확인도 하지 않고 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정성껏 키운 꽃과 나무가 누군가에게 전해질때 키우는 이의 사랑까지 전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최동출 사장과의 만남을 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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