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문화 향기 가득한 청정지역 주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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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화 향기 가득한 청정지역 주교마을
  • 장나현 기자
  • 승인 2016.07.28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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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21>
농촌마을의 위기 극복한 희망스토리를 만나다 - 결성면 형산리 주교마을

과거 바닷물이 마을에 들어와 배다리 이름
두레풍물전통, 정월대보름 행사 전통 잇다 
10가구 이상 귀농 귀촌한 살기 좋은 마을 
문화 향기가 숨 쉬는 마을 만들기가 바람 

주교마을 전경

■주교(배다리)마을
형산리 주교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약 9km정도 떨어져 있다. 동으로는 구항면 장양리, 서로는 갈산면 와리, 남으로는 은하면 금국리, 북으로는 갈산면 쌍천리와 접하고 있어 사방이 3개의 면과 접해 있다. 주교(舟橋)마을은 ‘배다리’란 뜻으로 과거 마을안쪽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다녔다고 한다. 배다리는 냇가에 통나무를 엮어 물이 들어오면 다리고 올라가고 물이 빠지면 다리가 내려가게 설계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마을주민들은 주교마을이라는 이름보다 ‘톨미’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에 의하면 지형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톨미의 미는 산을 뜻한다고 유추하나 톨의 유래는 찾지 못했다. 마을 위쪽 구억말에 있는 상여바위는 선사시대의 고인돌 모습이다. 그 아래쪽에 김달순 노인회장의 밭에서 기와와 대문 돌저귀돌이 나온 것으로 보아 큰 대궐같은 기와집이 있을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청동기시대 유물인 반월형 석부 돌도끼 등이 출토됐다. 

배다리가 있던 자리

보통 마을에는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곳이 대부분이나 주교마을은 널찍한 곳에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곳곳에 들어서 있다. 마을은 윗톨미, 구석골, 새터말, 건넝골, 서당골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성씨가 살고 있는 각성받이가 주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근래들어 한우농가가 늘어났으며 특산물로 냉이를 많이 재배하였으나 요즘은 고들빼기를 재배하고 있다. 주교마을은 한국 전쟁 당시 가난하고 순진해 동인이 사망하고 전쟁 이후에는 마을사람들의 비협조와 냉대로 마을운영과 발전에 힘든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최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이환중 이장이 마을을 이끌어 마을안길정비, 회관환경개선, 체육문화편의시설 등 마을이 변화하고 있다. 

대보름 풍년 기원제

■두레풍물 전통
주교마을은 1960년대까지 두레가 성행했다. 공동모심기인 논매기 작업을 할 때 좌상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1891년에 만든 용대기를 앞세우고 그 뒤에 농악이 따라 논으로 향했다. 주교마을과 구수동 마을에 있는 용대기를 2014년 복원하였으며 원본을 홍주성역사관에 기탁할 예정이다. 이환중 이장은 “용대기는 마을의 보물로 전통을 잊지 않고 지켜나가는 모습이 의미있다”고 말했다. 마을에서는 농촌마을에서 사라져가는 정월대보름행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 대보름 때 주교 마을을 찾았을 때 마을사람들은 회관 앞에 돼지머리를 놓고 풍년기원제를 지내고 용대기를 올렸다. 또한 소원을 적은 달집을 태우며 풍물놀이를 진행했다. 정월대보름은 마을주민들이 모두 모여 직접 잡은 돼지고기를 굽고 한바탕 흥을 돋우며 주민들이 화합하는 날이다. 

김판규 씨의 아코디언과 조운선 씨의 장구 연주

■주교마을의 귀농·귀촌인
2000년 이후 주교마을에 귀농·귀촌한 가구가 10가구일 정도로 주교마을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교마을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마을주민들이 화합하기 때문이다. 또한 너른 들이 있고 하천이 흐르는 등 탁 트인 마을경관에 가슴이 시원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운선 화가는 지난 2000년에 마을에 귀촌했다. 홍성, 천안, 예산 등지에서 중등 미술 교원을 하던 조운선 씨는 마을에 ‘송림미술관’을 건립해 평생해오던 유화작업을 하고 있다. 집 안에는 도자기, 청동기시대 유물 등이 가득하다. 조 씨는 취미로 대금산조를 연주하며 회관에 모인 사람들에게 우리 음악을 들려준다. 그는 서예, 농악, 악기, 그림그리기를 하며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오직 즐거운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김판규(82) 씨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가 지난 2004년도에 주교마을에 정착했다. 2002년 아내와 관광을 하러 결성에 온 김 씨는 주교마을의 아름다움에 빠져 빈집이 나오자마자 내려오게 됐다. 학창시절부터 악기에 능했던 김 씨는 마을에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의 농악지도는 물론 하모니카 연주를 하고 직접 만든 피리를 불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다. 재담꾼인 김달순 노인회장은 “전국 어느 마을회관에서 대금연주하고 아코디언 음악소리에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회관이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며 마을사람들의 재능을 자랑했다. 2010년 홍북에서 이주해온 김형철 씨는 마을사람들이 ‘복덩이’라는 별명을 지어줄 정도로 마을 일에 열성적이다. 마을 어르신들을 부모와 같이 공경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적극 나서고 있어 마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이 밖에도 김정길 씨와 박주용 씨 등도 주교마을에 정착해서 마을발전과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조운선 씨가 운영하는 갤러리와 작품들.

■이장의 마을소개 
주교마을은 41가구 95명이 거주하고 있는 살기 좋은 마을로 유치원생이 2명, 초등학생이 4명, 중고생이 9명이 있어 분위기가 활기찹니다. 예로부터 집성촌이 아니었기에 마을에 외지인이 들어와도 마을사람들과 쉽게 융화되어 살고 있지요. 우리 마을은 단합이 잘 되는 점이 가장 큰 자랑입니다. 지난 17일 제헌절날, 전 가구인 41가구가 태극기를 게양해 나라사랑운동을 실천하기도 했지요. 결성면에서 전 가구가 태극기를 게양한 마을은 우리 마을이 유일하지요. 요즘 마을에 태양광 발전소 건립으로 인해 무분별하게 삼림이 훼손되고 있어 마을 사람들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권장하는 사업이라지만 마을사람들의 의견을 좀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 마을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들간의 화합과 단결입니다. 귀농·귀촌인들이 잠시 머물다가 가는 마을이 아닌 마을에 정착해서 전원생활을 즐기셨으면 합니다. 주교마을에 오실분들이 있다면 제가 적극적으로 정착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우리 마을은 음악이 흐르고 미술이 있고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마을입니다. 마을의 숨은 인적자원을 발굴해 음악이 있는 회관, 시골에 숨어 있는 미술관의 자원을 향유하는 것, 바로 문화의 향기가 숨 쉬는 마을로 만들기가 꿈입니다.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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