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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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1>
  • 한지윤
  • 승인 2016.08.04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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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소영이가 연숙이에게 말했다. 연숙이는 그 사나이를 흘깃 쳐다보고는,
“그만 두는 게 낫겠어, 저 관상을 보니 꽤 밝힐 타입인 걸……”
그 때 입구에서 미국인 같은 젊은 남녀 셋이 들어오는 것을 계기로 소영이는 아무렇지 않게 유리컵을 들고 자리를 옮겼다. 그 외국인 마도로스 바로 맞은 편 자리로.
그는 지금 막 들어오는 미국 젊은이들을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담배가 길게 타들어가 담뱃재가 푸석 떨어지는 것도 모르는 채 그는 이상한 눈빛을 하고 있다.
“어느 나라 국적이시죠?”
소영이가 불쑥 영어로 말을 걸었을 때 저편 연숙이는 앉은 자리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넌 왜 그리 주책이 없니’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네덜란드입니다.”
“서울엔 친구 분들이 안 계신가요?”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곤드레만드레 취해 큰 소리를 질러대며 떠드는 미국인들 쪽을 불쾌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술을 드셨는데 우울해 보이는 군요.”
“오늘은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요. 회사측이 화물 하역작업을 무리하게 요구해서……게다가 부두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고……”
소영이는 이 술집에 들어오기 전에 바깥 어딘가에서 회색빛 겨울바다에 네덜란드 깃발을 달고 떠 있는 배를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출항이 늦어지겠군요?”
사나이는 부두 사용료가 증가되고, 약정된 날까지 뉴욕에 입항하지 못하면……그렇게 되면 화주도, 회사도 그에게 불평을 해댄다는 둥 떠들어 댔다. 게다가 어머니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편지가 모국으로부터 날아와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13일의 숫자에 요일도 금요일이라 그런지 재수없는 일만 겹치는 모양이라고 불평하며 말했다. 어느 새 연숙이가 소영이 옆 자리에 와 앉아 있었고 눈앞에 젊은 아가씨가 둘이나 있는데도 그의 말투는 재미없게도 독백처럼 뇌까리고 있다. 1년 전 중국요리 집에서 보았을 때의 붙임성 좋던 그와는 닮은 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때 미국 젊은이들의 시선이 소영이 에게 집중되었다.
“헤이! 베이비!”
그들은 싱겁게 길다란 팔을 내두르며 시끌벅적한 테이블 사이를, 밀어 헤치듯 하면서 소영이와 연숙이가 앉은 테이블 쪽으로 찾아 왔다.
“쓸데없는 짓 말랬는데두……”
연숙이는 불평을 하며 몸을 떨었다.
미국인들은 두 아가씨가 외국인 마도로스의 상대라고 알자 갑자기 농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소영이는 영어의 야비한 음담패설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태연했지만 주위에서는 한 바탕 웃음소리가 튀어 올랐으며 그 외국인 마도로스는 당황한 듯한 얼굴로, 그러나 무게 있게 뭐라고 맞받았다.
순간 사나이들 사이에는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캄온!”
주근깨 투성이의 미국인은 마치 레슬링 선수처럼 한 쪽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탁탁 치면서 도전적으로 나왔다. 그러자 그의 한패거리가 뒤에서 그를 붙잡고 말렸다.
소영이의 앞에 있던 마도로스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외투를 어깨에 걸머지듯 걸치면서 두 세 걸음  앞으로 나갔다.
미국인은 노려보면서 천천히 뒷걸음을 쳐가며 그를 응시했다. 그러나 마도로스 사나이는 잠시 멈춰 섰다가 뒤돌아 보며 소영이를 향해 인사인지 뭔지 모를 고개를 끄덕이더니 카운터로 가서 술값을 치루는 것이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은 채로 출입문을 열고 부시시 밖으로 걸어 나갔다. 마도로스 사나이의 등에는 우울한 어둠이 내리는 듯했다.
소영이는 비릿한 바닷내음이 나는 바깥 차가운 공기가 출입문 에서부터 쏴악 흘러 들어옴을 느꼈다. 그것은 우울한 겨울날의 특유한 냄새였다. 어느 새 설쳐 대던 미국인도 가죽 잠바의 옷깃을 세우며 제자리로 가 앉았다. 그 틈을 이용해 소영이와 연숙이는 밖으로 도망쳤다. 저 멀리 진눈깨비 속에 어른거리는 가로수 밑을 마도로스 사나이가 어깨에 걸친 외투도 입지도 않은 채 구부정한 결음걸이로 멀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정말 온통 무엇이건 빗나가기만 하는 재수 없는 날이다. 마도로스 사나이로부터 이국의 재미있는 얘기도 듣지 못했으며 물론 땅콩 한 알 함께 먹지도 못했다. 소영이는 연숙이 곁에서 지금이라도 그의 뒤를 쫓아가 한 잔 같이 마실까 어쩔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등 뒤에서
“어이, 누나야!”
하고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휙 뒤돌아 보니 블루진에 스웨터를 두툼하게 걸친 젊은 두 사내가 뒤따라 오고 있질 않는가.
“차라도 한 잔 하실까?”
순간 소영이는 맹렬한 기세로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싫어!”
연숙이가 말했다.
“대접이 나쁘군 그래.”
두 사나이 중 장갑을 낀 하나가 연숙이의 말에 아니꼽다는 듯 말했다.
“멋지다면 한잔 사 줘도 좋고……”
소영이가 입을 열었다.
“어엉? 그 쪽 누나가 얘기가 통하는 걸……”
흰 스웨터의 사내가 여자 투의 말을 썼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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