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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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2>
  • 한지윤
  • 승인 2016.08.18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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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갈지 안 갈지는 걸어가면서 결정할 테니까 마음 푹 놓으라구……”
소영이가 대범하게 말했다.
"O K."
사내들은 껄껄 웃었다.
소영이는 연숙이와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어쩔 판이야?”
연숙이가 속삭였다.
“지금 여기서 잽싸게 도망을 쳐도 곧 붙잡히겠지?”
소영이가 말했다. 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늘어선 카페의 뒷골목 사이로 뚫린 길이다. 소영이는 연숙이의 귀에다 대고 무엇인가 속삭였다.
“알았어? 신호를 하면 용기를 내는 거야.”
“으응.”
연숙이는 마른 침을 삼켰다.
뒤에서 불량 사나이들이 저희끼리 소영이와 연숙이의 육체 품평을 하고 있었다.
“오른 쪽 것은 히프가 굉장히 큰데?”
여성 목소리로 변성한 사내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오른쪽이란 연숙이다.
“히야! 정말 시네마쓰코프인데……”
소영이는 순간 뒤돌아보며 불량배들에게 소리 질렀다.
“뭐가 시네마스코프야!”
“옆으로 퍼졌잖아. 펑퍼짐하게 퍼진 걸 시네마스코프라고 부르지. 알겠냐?”
“유감이지만 우린 그렇게 육체파 미안이 아니야!”
소영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 비스타비죤 정도로 해 두지. 데이트 신청을 받아준다면 스탠다드고.”
“지금 의논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말하면서 소영이와 연숙이는 열심히 밝은 불빛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서서히 초조해 지고 있었다. 마음은 빨리 걷고 있는 듯 했지만 생각대로 걸음은 빨라지지 않았다. 카페가 늘어선 길을 2백 미터쯤 벗어나 커브진 길로 나가는 곳에 파출소가 있다.
“만일 우리가 함께 가지 않겠다고 거절하다면?”
연숙이가 의외로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럼, 그땐 끝장이지!”
여성 목소리로 변성하는데 능숙한 사내가 이번엔 굵직한 목소리로 욱질러 왔다. 길가에 세워진 망대의 조명등의 불빛이 이윽고 붉으레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서로 손을 잡지. 한 짝씩 말이야.”
사내 녀석이 엉뚱한 제의를 하며 소영이의 손을 잡으려고 들었다.
“싫어! 함께 가기로 결정이 났다면 그렇게 해도 좋지만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잖아?”
소영이는 사내의 손을 뿌리쳤다.
“뭐,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다구?”
상대가 손을 뻗쳐 오기까지에는 소영이의 계산으로는 아직 조금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젠 시간의 여유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소영이가 합기도의 기합 넣는 소리에 가까운 목소리로,
“연숙아!”
하고 외쳤다.
소영이와 연숙이는 동시에 휘익 잽싸게 돌아서며 상대의 가슴팍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순식간에 두 여자는 각각 상대방을 향해 냅다 뺨을 후려쳤다. 수십만 번 연습해 본 것 같은 솜씨로 번개같이 전격적으로 손바닥이 번갈아 허공을 가르며 두 사나이의 뺨다귀에 떨어져 내리자 사나이들은 방심한 상태에서 방어도 하지 못하고 당황스럽게 얼이 빠져 버리고 말았다. 어느 새 소영이와 연숙이는 두 사나이로부터 멀어져 가며 구두 발소리도 요란하게 달아나고 있었다. 이렇게 멋있게 끝날 수가 없었다. 가슴이 후련해지는 기쁨과 동시에 두려운 공포가 교차하며 뒤를 엄습해 왔다.
저만치 파출소 불빛이 보이기까지 죽자사자 달려 나왔으므로 어느새 그들은 서서히 빨리 달리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젠 안심이다. 숨을 헐떡헐떡 몰아쉬면서 소영이와 연숙이는 일그러진 미소를 서로 지어 보였다. 사내녀석들은 놀라서인지 얼이 빠져서인지 쫓아오기를 포기한 듯했다.
“괜찮아, 이젠. 경찰한테 알리면 될 테니까.”
소영이는 연숙이를 안심시켰다.
“얻어 맞은 쪽은 저 녀석들인데, 혹시라도……”
“별 볼일 없는 애들이야. 우리들한테 맞은 걸 오히려 기분 좋아 할텐데, 어디 생전 여자 손바닥으로 뺨 맞는 영광 누려 보겠어? 괜찮아.”
소영이는 기숙사로 돌아가는 연숙이와 헤어진 후 계속 기분이 이상했다. 어쩐지 오늘은 전세계 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너 나 할것 없이 재수없는 13일에 겹친 금요일의 비애를 똑같이 겪고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뺨다귀를 얻어 맞은 사내들도 지금쯤 우리들을 저주하고 있을 것이다. 외국인 마도로스도 어디선가 지금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진눈깨비가 내리는 항구에서 고독과 비애를 되씹고 있을 것이다.
소영이가 전철을 타고 돌아와 내렸을 때, 다행히 진눈깨비는 그쳐 있었다. 밤하늘은 구름이 걷히고 있었고, 차가운 별빛이 눈에 헤일 정도로 보였다. 소영이는 다시 한 번 음산한 부둣가 골목에서 벌어진 일을 떠올렸다. 불량한 사내 녀석들의 유치한 희롱, 분명 그것은 신변의 위험이었다. 뺨다귀쯤 갈겨 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여건만 허락됐다면 더 참혹하게 갈겨 줄 수 있는 건데……가슴이 후련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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