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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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3>
  • 한지윤
  • 승인 2016.08.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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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그러나 언제나 그렇게 잘 된다고만 할 수는 없다. 상대 녀석들의 허점이 없었다면 꼼짝 못하고 다시 붙잡혔을지도 모른다. 위험했었지.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소영이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소영이의 집 근처에도 파출소가 있다. 그 등불이 보였을 때 그녀는 놀란 토끼처럼 반사적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소영이는 그런 자신이 우스워 혼자 싱긋 웃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소영이는 파출소 현관 앞에 동생 규형이가 웬 여자와 함께 서 있는 것을 보자 긴장이 되어 발소리를 죽이면서 가까이 다가갔다.
“외진 곳에 숨어서 키스를 하고 있다면 그건 문제야. 그런 것쯤 알고 있겠지?”
“왜 안 된다는 거죠? 그게 나쁘다고 어디에 써 있기라도 해요?
당신이 본 것만으로도 걸려들 것도 없고 하기야 누군가에게 들켰다고 해서 꺼림칙하지도 않아요.“
규형이와 함께 있는 여자는 천진난만해 보이는, 코가 오똑하게 날이 선 예쁘장한 소녀였다. 동생 규형이는 그 소녀에 대해 언젠가 소영이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소녀는 한 백화점의 ‘스위트 걸’ 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시골에서 살고 있었는데 모교의 선생이 추천을 해주어 백화점에 응모하여 입사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살결에서는 언제나 건강한 향기가 나지만 아직 어딘가 촌스러운 흙내음도 난다고 규형이는 웃으며 말했었다. 돈을 저축하게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시는 남자와 결혼해서 살겠다고 말했었다. 지금 둘의 사이는 다만 친구라는 전제로 사귀고 있다고 했다. 결혼 같은 건 아직 나이가 어리므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거니와, 어느 한 쪽이 결혼하게 될 때까지, 그리고 어느 한 쪽이 결혼하게 되면 미련없이 헤어지기로 약속을 정해 놓았다고 했다.
“너희들 아직 미성년이잖아? 그러니까 경찰에서 선도할 의무가 있는 거야?”
경찰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청년인 것 같았다. 그가 뭐라고 말할 때마다 차가운 밤 공기 속에서 하얀 입김이 불빛에 너울거렸다.
“무슨 소리예요? 난 M대학 법학과 학생인 걸요. 파출소 뒤편 벽에다 소변을 본 게 도대체 어떤 조항에 죄라고 해서 이렇게도 훈계하시는지 좀 가르쳐 주시죠.”
소영이는 조마조마했다. 규형이는 아직 고등학교 2학년생인 것이다. 지금 신사복 바지에 더블 코트를 입고 있어 일단 성인으로 보이지만 그게 들통이 나면 일은 크게 벌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어두컴컴한 외진 곳에서 키스를 하다 발각되고는 소변을 본 것으로 우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경찰은 그 말에 순간 표정이 당황하며 굳어졌다. 그는 보란 듯이 버젓이 규형이가 담벼락 곁에서 소녀를 끌어안고  키스를 하고 있던 광경을 목격하고 그 둘을 불렀는데, 오히려 자기들을 간섭한 것이 못마땅하다는 자세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소영이는 일부러 구두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파출소 앞을 지나쳤다. 그리고 무심코 얼굴을 돌려 바라보듯이 하면서 그녀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규형아! 웬일이지?”
“아무것도 아냐……”
규형이는 재수 없다는 듯이 머뭇머뭇 했다.
“저어,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얜 제 동생입니다만……”
“길에서 당당하게 키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성년자같이 보이고……게다가 키스가 아니라 소변을 보고 있었다고 우기고 있어……”
“죄송합니다.”
소영이는 정중히 사과하는 태도로 나왔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눈에 애교의 빛을 뿜으며 젊은 경찰관을 향해 말했다.
“집으로 데려가 동생을 잘 타이르겠어요. 참, 그런데 키스를 해본 일이 있으세요?”
“저 말입니까?”
경찰은 놀라면서 되물었다.
“네에.”
“없어요. 아직 없습니다.”
“키스는 나쁘지 않아요. 특히 당당하게 할 때는 즐거운 거예요.”
“소영이는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경찰은 이제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는 듯했다.
“가령 여자친구와 한다고 하더래도……”
소영이는 상대방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당신에게 키스해도 괜찮겠어요?”
“아니……제발……”
어느 새 소영이는 경찰의 몸에는 조금도 손을 대지 않고 오히려 손을 뒤로 깍지를 끼고는, 발돋움을 하고 키가 큰 경찰의 거무티티한 볼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의 볼은 겨울밤의 찬 공기에 얼어 있는 듯 차가왔다. 소영이의 입술이 그 차가움을 얼마쯤은 녹여 주었을까.
소영이가 다시 경찰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의 표정에는 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소박한 눈빛으로 소영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굳어진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별난 아가씨군! 내 뺨에 루즈는 안 묻어 있나요?”
네 사람의 웃음 소리가 구름이 걷히는 겨울밤 하늘로 솟아 올랐다.
진눈개비가 내리고 찬 바람이 부는 음산한 날에는 누구나 불쾌지수가 상승해 쉽게 우울해지고 쉽게 화가 나고 쉽게 불쾌한 기분이 되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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