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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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4>
  • 한지윤
  • 승인 2016.11.1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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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그날 밤 연숙은 우등생으로서의 현명함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두 사람은 온 몸이 낙엽투성이가 되어 가면서 뜨거운 키스를 몇 번이고 했었는데, 그 때에 일동은 사랑의 약속으로 연숙의 육체를 요구해 왔었다. 그 흥분된 상황아래서도 연숙은 우등생답게 똑똑했으며 게다가 생리학과 심리학의 책들도 몇 권 읽었으므로,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서두르면 안 돼요.”
하고 일동의 등을 한 번 탁 치며 그의 요구를 냉정하게 거절해 버렸던 것이다.
일동이의 서울행 출발은 영웅의 출전하는 때와 흡사했다. 마을사람이 총출동해서 역까지 전송을 나갔는데, 이 때에 일동이를 위해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도 했다. 연숙은 사람들 틈에 끼어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면서, 사랑을 고백한지 20일도 채 안 돼 멀리 떠나가는 일동이의 모습을 두 눈을 들어 필사적으로 뒤쫓았었다.
얼마 후 서울로부터 3통의 편지가 잇달아 날아왔다. 고향산천에 대한 그리움과 그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매일 밤 잠자리에서 꿈을 꾸고 있다. 그대의 사랑이 있고 고향 사람의 기대가 있는 이상, 나는 금의환양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는 등.
지금의 연숙이라면 ‘이런! 이 따위 편지에는 어딘가 이상한 냄새가 나’ 하고 느꼈을 것이다. 사랑은 인간을 맹목적으로 내팽개쳐 버리는데, 확실히 그에게 홀딱 반해 있던 연숙은 일동이의 인생에 대한 이 우쭐한 태도의 싹을 간파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일동은 서울로 온 이래, 몸 어딘가에 S대학교의 뱃지가 붙어 있지 않을 때가 없었다. 윗도리를 벗으면 버클에 S대학이 새겨져있고 바지마저 벗고 벌거숭이가 된 때에도 코끝에다가는 S대학생다운 분위기를 매달고 있을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동은 K시에서 서울로 나와 영재학교에 다니고 있는 여자를 사귀었다. K시의 여자라면 S대학에 입학한 자신을 우상처럼 높이 평가해 주었기 때문이다. 숲 속에서의 연숙과의 키스도 좋지만 지금 그녀는 곁에 없으므로 현실적으로 손쉽게 손을 댈 수가 있는 여자를 갖고 싶은 것이었다.
우연한 일이지만 마침 이 무렵, 소영은 문제의 일동과 만난 적이 있었다.
소영이가 잘 아는 H대학의 이학부 조교수 댁에서였다.
이 조교수는 S대학교 출신이며 이름은 손문기인데 왕년에 조정선수였다고 했다. 불어 버리면 날아갈 듯한 체격인데 옛날에는 헤라클레스와 같은 체격을 하고 있었다고 자랑했다. 그 모두가 믿겨지지 않는 허풍이었지만 그는 입이 험하고, 위세가 좋고, 개방적이어서 지금도 후배들이 출입을 많이 하고 있다. 후배들의 잦은 출입은 손문기 교수에게 쌀이나 축내게 하고 돈바닥이나 긁혀가는 귀찮은 일들 뿐인데, 그는 젊은 사람들의 출입을 즐겁게 생각하고 있는 활달한 중년 교수였다.
어느날 소영이가 손문기 교수댁에 가 있을 때 후배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 날 손문기 교수는 소영과 둘이서 위스키를 몇 잔 마신 탓에 매우 기분이 좋아 가지고 소영이를 포함한 4명의 젊은이들과 저녁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자고 제안했다.
“또 카레라이스 입니까?”
한 청년이 물었다.
“또 라니, 무슨 소리야? 오늘은 귀부인이 계시니까 고급 집으로 가야지.”
손 교수가 택한 것은 레스토랑이었다.
“너희들 촌놈은 아무 것도 모르겠지만, 이건 단순한 국수와는 다르지.”
취기가 오른 손교수는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180센티가 훨씬 넘는, 키가 큰 대학생들 사이에서 손교수는 난장이처럼 보였다. 세명중 둘은 학생복 차림이었다. 학생복을 입은 학생 중 한명은 말투로 보아 순수한 서울 출신이었으나 나머지 두 명은 지방 출신이었다.
손교수는 지방 태생이어서 지방 출신을 좋아하는 버릇으로 호의를 갖고 있는 후배를 ‘너희들 촌놈은’ 이라고 뭉뚱그려서 부르곤 했다.
세 사람의 식욕은 놀라울 정도였다. 학생복을 입고 시골말씨를 쓰는 학생은 포크로 서양 국수를 먹고 있는데, 애가 달았던지 젓가락을 부탁했다.
“정말 촌놈티를 단단히 내는데……”
그가 바로 일동이였다. 일동은 나이프나 포크는 익숙하지 못했으므로 많이 먹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참고 있었다.
“아니, 돈을 지불하고 먹고 있으니까 사양할 것까진 없겠지……”
학생복을 입은 촌놈이 말했다.
“자기가 돈을 낼 것처럼 말하는군”
학생복의 도시인이 말을 받았다.
소영은 세 학생 중에서 학생복을 입은 지방출신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쏘스를 치고 젖가락으로 마카로니를 말아 올려 입으로 밀어 넣는 모습은 소박하고 사내다워 보였다. 이에 비해 일동은 익숙치 않는 양복을 입고 무리해가며 손으로 마카로니를 먹고 있는 모습이란 볼품없는 시골뜨기 그대로였다.
“너희들 촌놈, 여전히 잘 먹는군. 어때? 밥과 여자, 어느 쪽이 더 좋은가?”
“전, 밥입니다.”
도시인 출신이 말했다.
“저도 약간 밥 쪽이 좋습니다.”
시골 출신이 깊이 생각한 듯 말했다.
“여자가 있기로서니 먹을 수 없는 건 아니잖아요?”
“전 무엇보다도 배가 고파 있을 때와 고파 있지 않을 때와 느낌이 다릅니다.”
“저는 약간 여자 쪽이 좋습니다.”
일동이가 느릿느릿 말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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