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 흐르며 너른 들판 펼쳐진 아름다운 쌍천리
상태바
냇물 흐르며 너른 들판 펼쳐진 아름다운 쌍천리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6.11.17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 <36>
농촌마을의 위기 극복한 희망스토리를 만나다 - 갈산면 쌍천리 마을

국도29호선 따라 길게 뻗고 구항면·결성면 경계와 맞붙어
용암마을 생활권과 닷마루·점터·수작굴 생활권으로 나뉘어
단일리로 2개 경로당 운영… 용암마을은 신평이씨 집성촌
주민 단합과 화합 잘 되는 것 자랑… 쌍천교 건설 대표적

쌍천리 전경.

◇쌍천리 개관과 자연환경

갈산면 쌍천리는 총 58가구가 살아가고 있다. 조선 말기에는 홍주군 고남하도면에 속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 홍성군 고도면에 속했다. 당시 수척리와 이동, 용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해 쌍천리라 했다. 1942년 다시 면 이름 개칭에 따라 갈산면 쌍천리가 됐다.

쌍천리는 갈산면소재지에서 동쪽 방향으로 3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마을 형태는 국도 29호선을 따라 동서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마을 앞으로 남산천이 나란히 흐르고 있으며, 하류지점에서 남산천과 와룡천이 합류한다. 마을 앞쪽으로 논으로 이뤄진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쌍천리는 구항면과 결성면 등의 경계와도 맞붙어 있다. 동쪽으로는 구항면 남산리가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갈산면 행산리, 남쪽으로는 결성면 주교리와 인접해있으며, 북쪽으로는 갈산면 동산리와 가곡리 신촌마을이 인접해 있다. 안재홍 쌍천리 이장은 구항 및 결성면과 인접해 있어 마을이 귀가 밝고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나눌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남산천을 건너기 위해 두 다리가 놓여 있는데, 용암마을 앞으로 국도 29호선과 연결해주는 남산교가, 닷마루 마을 쪽으로는 쌍천교가 놓여 앞뒤 마을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쌍천은 마을 앞에서 두 개의 큰 냇물이 합쳐진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며, 구항면 오봉리 쪽에서 내려오는 남산천이 마을 앞으로 흐르다가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쪽에서 내려오는 와룡천과 합쳐진다. 실제로 와룡천과 남산천이 합류하는 지점 바로 위쪽에서 조그만 실개천과 남산천이 마을 하류 쪽에서 먼저 합류하고 있다. 두 냇물이 합쳐지면서 흐르다가 와룡천과 다시 합류하게 되므로, 세 개의 내가 합류하는 셈이다.

마을 지명으로는 용암과 닷마루, 점터, 수작굴 등이 있다. 용암은 마을 앞 냇가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를 용바위라 불렀으며, 전설에 의하면 백년 묵은 이무기가 용이 돼 승천한 바위라고 한다. 용바위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 용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용암마을 한복판에는 불쑥 솟아오른 언덕빼기가 있고, 수백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옛날 일제강점기 진흥회의를 하던 장소이며 현재는 용암마을 경로당으로 마을 공동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쌍천리는 현재 쌍천리 경로당과 용암마을 경로당 등 두 곳의 경로당이 운영되고 있다. 쌍천리의 경우 단일리로 규모가 크기 때문인데, 용암마을 주민들은 자치회비를 걷어 조립식 가건물로 경로당을 세웠고 이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군에서 지원되는 경로당 보조금은 적은 액수여서, 갈산면사무소 및 갈산농협의 지원을 받아 기름을 제공받아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갈산면의 지원으로 용암마을 경로당의 난방시설을 보수하기도 했다.

쌍천리 경로당 전경.

◇쌍천리 생활권과 신평이씨 집성촌

쌍천리는 마을 생활권이 두 지역으로 갈라져 있다. 용암마을 생활권과 닷마루, 점터, 수작굴 생활권으로 분리돼 있다. 이는 용암마을과 닷마루 사이에 ‘청룡뿌리’라고 하는 산모퉁이가 놓여 있어 왕래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또 용암마을은 마을 생활권이 마을 앞 남산교 건너편에 있는 동산리와 가깝다. 동산리 쪽에는 신평이씨가 많아 용암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신평이씨들과 심리적 유대감이 밀접하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용암마을은 행정상 쌍천리이지만 생활권은 동산리 쪽으로 치우쳐 있다.

쌍천리는 신평이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용암마을에는 신평이씨가 집성촌을 이뤄 전체가 신평이씨다. 용암마을에 신평이씨가 정착한 것은 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당진에 살던 신평이씨가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시초라고 한다. 지금도 맨 윗대 조상의 산소가 쌍천리와 이웃한 남산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특이한 것은 신평이씨 맨 윗대 조상묘 옆에 장모의 묘가 함께 있는 것인데, 과거 풍습으로 볼 때 산소가 처가 부모들과 함께 있는 것이 이채로운 것이다. 이곳에 정착한 조상이 토착민의 딸과 결혼해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가을걷이로 분주한 모습.

◇마을 주민 화합과 쌍천교 건설

쌍천리는 다른 무엇보다 마을 주민 간 단합과 화합이 잘 된다는 것이 큰 자랑이다. 마을에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주민들은 항상 힘을 모아왔고, 과거에도 두레와 산신제 등을 함께 지내왔다. 또한 매년 4월이면 경로잔치를 하고 있으며, 출향인 가운데 마을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종종 돌아와 마을 잔치를 함께 열고 있기도 하다.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은 대표적 사례는 쌍천교 건설을 꼽을 수 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남산천을 건널 수 있는 교량 건설은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는데, 1979년 쌍천교를 건설할 때 모습이 당시 쌍천리 이장이었던 김기태 씨의 경과 보고서에 담겨 생생히 전해지고 있다. 다음은 경과 보고서 내용의 일부분이다.

본 교량이 가설된 지점은 갈산면 쌍천리와 동산리의 경계를 이룬 지점입니다. 갈산면 쌍천리, 동산리, 내갈리와 결성면 형산리 주민 800여 명에 1일 왕래 인원 400여 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량이 가설되지 않아 각종 생필품 운반과 농경지간 왕래 불편은 물론, 30mm 강우에도 통행을 못하고 1.5km 지점에 있는 이동교와 남산교를 이용해 통행을 하는 등 조상 전래의 숙원사업이었습니다. 그동안 뜻을 이루지 못하던 차에 1978년 12월 주민총회에서 1979년도 새마을 사업으로 추진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1979년 새마을 자재 지원을 받아 총연장 40m에 폭 5m의 교량을 가설한 것입니다.

해빙이 되지 않은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2월 15일에 착공했습니다. 5월 30일에 완공한 본 교량가설에는 당초 새마을사업 지원 양회 1230포대와 철근 6.2톤, 주민 부담 노력 1563명과 현금 240만원으로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지원총액 259만원과 주민 자담 240만원과 노력 포함 866만원의 사업을, 새마을 정신으로 뭉쳐 주민의 힘으로 본 교량을 완공하게 된 것입니다.

이 교량의 특징으로 자랑하고 싶은 것은 시공부터 완공까지 공사에 소요되는 거푸집을 제외하고는 우리마을 주민의 노력과 자재를 자체 부담했습니다. 골재 확보를 위해 마을내 경운기 8대가 연동원 20일과 양수기 2대가 연 32일, 부녀회원 50명이 연인원 360명 동원됐고, 마을 내 80대 노인 할머니까지 작업에 참여해 이뤄진 교량임을 말씀드립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