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6>
상태바
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6>
  • 한지윤
  • 승인 2016.12.01 0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그날 밤, 친목을 겸한 파티가 열렸는데 감추고 있던 솜씨와 재주를 서로 겨루기로 했다. 친목파티가 끝난 것은 9시경 이었고 제각기 숙소로 돌아가 다시 파티는 계속되었다. 한 동안 웃음과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파티의 열기가 가라앉자 창 밖에서 울어대는 한 여름 풀벌레 울음을 들어가면서. 인생토론이 조용히 오고갔다.
“사실 저는 이번 학습강습회에 참가할 자격이 없는 사람 이예요. 아직 학생의 신분이고, 단지 아동화에 흥미가 있어 때때로 시립 유치원에서 그림 그리기를 도와주고 있으니까 그 정도로 자격을 삼고 참석한 거죠. 저는 아마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아이들을 상대로 지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 에서는 이미 아픔을 느껴왔고 또한 앞으로도 괴로운 추억만 남게 될 것이고, 좋은 추억은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차례대로 돌아가며 자기 인생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절실한 인생이야기란 무엇인가 생각하던 차에 연숙은 자기 차례가 되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것은 추상적으로 생각되기 쉬운 것이기는 했지만 그녀로서는 옳은 생각인지도 모른다. 순수하지 못한 어른의 세계. 그리고 아이들이 커 가며 잃어 가는 그 무엇으로 해서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이 자꾸 흐를 듯해 당황했었다. 모두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연숙은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려오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면서 자신의 음성이 천박한 감동에 떨리지 않았던 것을 저으기 다행으로 여겼다. 연숙의 동공에 번쩍이며 괴이는 눈물은 아마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때 유선생이 불쑥 말했다.
“저는 연숙씨와는 반대입니다. 저의 생각은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방면에 자신의 능력과 영향력을 뻗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는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연숙이가 소영이에게 그림엽서를 보낸 것은 그날 밤이었다. 연숙은 그 짧은 대화 사이에서 마치 두 사람의 영혼의 교류가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연숙은 외로움과 흥분된 감정이 교차돼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튿날 오전 중에는 강의가 있었다. <오브제로의 추상> · <유아의 표현활동> · ,<색채와 형태> · <유아의 특수 지도방법> · <어린이의 생활예술> 등 몇 개의 주제 하에 강의가 진행되고 강의가 끝나면 정오까지 토론과 연구, 질의응답이 5일간 진행된다.
연숙은 강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유선생의 목덜미만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 겪어 온 온갖 고난과 고통의 존재 덩어리가 지금 이 순간, 유문식이라는 한 인간을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싶은 생각이 연숙의 마음에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문득 연숙은 유문식의 가슴에 파묻혀, 태어나서 이제까지 겪어 온 그 삶의 모든 응어리진 덩어리를 쏟아 놓으며 울고 싶었다.
유선생이 환영만 한다면 자신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대로 그를 따라 갈 것 같았다. 유선생은 비겁한 일동이가 가지고 있지 않은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이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 이상이 불타오르고 있기 때문에 그의 눈은 맑게 빛나고 있었으며, 그의 마음도 말도 따뜻한 것이었다.
5일 동안의 오후는 그림그리기, 합창, 고아원 방문, 근교관광 등으로 프로그램이 배정되어 있었는데, 이틀째의 정오가 지나서였다. 80여명의 참가자들은 고아원을 방문하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멀리보이는 치악산은 덮쳐누를 듯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눈을 들어 바라보면 등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연숙은 언제나 유선생으로부터 약간 떨어져서 걸어갔다. 나무숲 사이로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곱게 유선생의 머리에서 어깨로 어루만지듯 지나갔다. 호반의 길로 나섰을 때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 그 순간, 주머니에서 가죽지갑이 떨어졌다. 연숙은 달려가서 그것을 주우려고 했다. 유선생은 지갑이 떨어진 것을 모르는 듯 했다. 지갑 곁에는 지갑이 떨어지는 바람에 지갑 속에서 빠져 나온 듯한 한 장의 사진이 풀잎에 걸쳐져 있었다.
연숙은 그 사진을 집어 보았다. 순진해 보이는 표정을 한 사내아이가 두 다리를 냇물 속에 넣고 장난감 물통을 들고서 이쪽을 보고 있지 않은가. 연숙이는 지갑과 사진을 주워 챙기고는 숨을 헐떡거리며 유선생에게 달려갔다.
“중요한게 떨어졌어요.”
유선생은 놀란 듯이 받아들고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고맙군요’ 라고 인사말을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내 아들 놈입니다. 닮았습니까?” 하고 말했다.
연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유선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면서 유심히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어쩐지 사진은 이중으로 촬영되어 두 개의 영상이 인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사내아이의 얼굴 뒷면에는 유선생의 아내라는 여자가 상냥하고 온화한 미소를 뛰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유선생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에 차 있는 한 여인의 행복한 미소였다.
“아이란 나의 확실한 희망의 하나죠. 연숙씨도 장래 무엇을 하게 되든 아이를 갖는 편이 좋을 겁니다.”
유선생의 음성은 진실하고 마치 부탁을 하듯 말했다. 연숙은 ‘아이를 갖게 되면 문식씨 당신의 아이가 좋겠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신을 버리고 달려든다고 해도 그것만은 어려웠다.
그날 밤은 유달리 달이 밝았다. 연숙은 가슴이 너덜너덜 찢기워 발겨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방을 빠져 나와 밤이슬에 젖은 뜰로 나왔다. 유 선생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유선생의 방에는 등불이 꺼져 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