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권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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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놀이
  • 정규준<한국수필문학진흥회이사·주민기자>
  • 승인 2016.12.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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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골동네에 씨돼지 한 마리가 있었다. 동네 암퇘지가 발정이 나면 원정하여 씨를 퍼뜨리곤 하였다. 음양의 기운이 차오르는 봄날이면 신작로를 가로질러 이웃마을로 원정 가는 녀석을 볼 수 있었다.

유전자의 부름에 충실한 녀석의 후각은 남풍을 타고 건너오는 암컷의 냄새를 놓치지 않았다. 늘 주인보다 앞서 갔는데 길을 잘 못 드는 법이 없었다. 절름발이였던 주인은 회초리를 들고 기웅뚱거리며 수퇘지를 몰고 가곤 하였다.

우리집 암퇘지도 발정이 나 녀석이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 재밌는 장면을 보기 위하여 우리집으로 몰려들었다. 아버지는 마당에다 암퇘지를 풀어놓고 기다렸다.

이윽고 수퇘지가 모퉁이에 모습을 드러내며 원초적이고도 드라마틱한 광경이 시작되었다. 암퇘지를 본 녀석은 흥분한 듯 꿀꿀대기 시작하고 걸음은 빨라졌다. 너무 급히 다가오다가 앞발이 엉켜 고꾸라지기도 하고, 텃밭 주변에 쳐놓은 삐삐선 줄에 목이 엉켜 한참을 몸부림치기도 하였다. 마당으로 들어선 수퇘지가 암퇘지 위로 허겁지겁 올라탔다.

두 앞발을 암퇘지 등 뒤로 올리고 배 밑에서는 뻐얼건 심벌이 나와 암놈의 엉덩이를 여기저기 찔러대는 것이었다. 녀석의 심벌은 불가능한 곳에 구멍이라도 파서 들이밀 작정인양 드릴 같이 생겼던 것으로 기억된다. 암퇘지는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애를 먹였고, 땅바닥에는 허연 분미불이 질펀하게 깔렸다. 어른들이 저 액체는 살과 살의 마찰을 줄이기 위하여 교접이 이루어지기 전에 나오는 윤활유 같은 것이라 했다.

녀석이 얼마나 급했는지 암퇘지의 몸 안에다 넣을 액체를 여기저기 갈겨놓은 것이었다. 어른들은 뒤에서 실실거리고 아이들은 호기심에 가득차서 침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었다. 돈 주고도 다시 못 볼 구경거리였다. 

수퇘지 아저씨는 연출가였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녀석의 심벌을 잡아 암퇘지의 그곳에 대어주었다. 드디어 교접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놈은 한 번도 제대로 허는 걸 못 봤당께”하면서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차는 것이었다. 종돈의 임무를 마쳤다는 듯 녀석은 제왕의 팔자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평생 동안 황권을 누린 수퇘지가 제왕의 자리에서 실각하였다. 주인 아저씨가 개량종 씨돼지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수퇘지는 곧장 도살장으로 팔려갔다.

“아, 그놈이 암컷한테 가는 줄 알고 산천경계 기웃거리며 잘도 가더라구. 도살장 앞에 오니까 그제서야 눈치를 챘는지 꽥꽥거리며 안 들어가려고 몸부림치는 거여. 그때 인부가 햄머로 머리를 한 대 치니까 정신이 나갔는지 갈지자로 걸어들어가더랑께. 그런데 그놈 해부했을 때 간 쓸개가 없었다는 얘기를 풍문으로 들었다네. 실제인지 지어낸 얘긴지 모르겄지만 말여 허허!” 주인 아저씨의 말이었다.

수퇘지의 말로는 보지 않아도 뻔할 일이었다. 도축장의 기계로 몸이 반쪽으로 갈라지고 각을 뜨고 분류되어 엉덩이에 시퍼런 도장이 찍혀 진열대에 수직으로 걸려 있을 것이었다.

그 ‘검’자가 왠지 볼상사납게 느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순실 게이트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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