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긴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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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남 긴 아픔
  • 이철이<사회복지법인 청로회 대표>
  • 승인 2016.12.12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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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삼촌의 쉼터이야기 <28>

2003년 9월 밤늦은 시간 중부지구대 한 경찰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름, 주소, 성명, 나이조차 알지 못하는 할머님이 계시는데 의료원 중환자실에 입원수속을 시켜놨지만 오갈 데가 없으신 분이 계신다고 한다. 통화를 마치고 의료원 중환자실에 가보았다. 그런데 할머님께서는 외형상 작은 상처도 없어서 왜 중환자실에 계신지 영문을 몰라 간호사선생님께 물어보니, 경찰아저씨들이 편찮으신 곳도 없는데 모시고 오셨다고 한다.

난 이상황을 어찌해야 되나 싶어 일단 퇴원을 하고 쉼터에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 저랑 같이 쉼터에 가요”라고 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침대에서 일어나신다.  그런데 갑자가 내 손을 잡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 나 버리지마 나 아저씨와 같이 살게 해줘”라고 말이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말이다.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경찰관에게 할머님에 대하여 물어보니 역전파출소에서 오갈 데가 없다고 하셔서 몸이 불편하신 분인줄 알고 의료원에 입원시켜 드렸다고 한다.  쉼터에 도착하여 할머님의 잠자리를 위해 이불을 까는 중에도 “아저씨 나 버리지마”라고 하시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신다.  그동안 여러 봉사활동을 했었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 접해본다.

할머님의 손가방을 확인해 보니 돈 10만원과 속옷 두 벌 뿐이었다.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가족들이 할머님을 버린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밥을 먹는 자리에서는 또 다시 할머니께서는 “아저씨 나 버리지마 여기서 아저씨와 살게 해줘!”라고 애원하시는 말씀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온다.

이 할머님을 내가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잘 보살펴 드리고 싶지만 이곳은 청소년들의 보금자리 인 것을..

경찰관께 아무리 여쭈어보아도 할머님의 신상문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셔서 나는 할머님을 연기군에 있는 금이성 마을에 입소시켜드렸다.  며칠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님의 가족을 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지문채취를 했는데 가족들의 주소와 모든 가족들의 신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난 경찰서에게 가서 할머님의 가족사항을 보고서 장남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연락을 드했다.  장남 대신에 그 부인인 큰며느리가 전화를 받았다.  할머님의 사정을 말씀드려면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큰며느리는 대수롭지 않게 전화를 받았다.

빨리 모시고 가라고 했는데도 며칠간 연락이 없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큰며느리가 할머님께 좋지 못한 행동을 해서 할머님이 일방적으로 집을 나온 것 같았다.  또다시 수소문 한 끝에 서산에 살고 있는 할머님의 사위가 와서 모시고 갔다.  할머님의 안부가 염려되기도 하고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그리고 이제 그만 며느리를 용서해주세요”

<2003년 9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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