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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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9>
  • 한지윤
  • 승인 2016.12.16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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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신변의 정리는 다 끝내고 가야 하겠지만……사망통지서만은 써 놓아야지. 자, 이거 받아 둬……”
가까스로 건네주듯이 하는 접혀진 종이를 받아 놓고 소영은,
“얘, 그런 짓 말아다오. 내가 자살 방조죄로 걸려들잖아?”
“그럼, 책상 위에 놔두지……”
“언제 결행할 거니?”
“오늘 밤에라도 결행할 생각이야.”
소영은 아무 말이 없었다. 연숙과 함께 자기 자신도 시련을 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아이들처럼 누군가에 일러바친다는 것은 방법이 졸렬한 것 같다. 곁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다면……그렇게 한다면 자기라면 그러한 억척스런 상대에 대한 대책을 위해서라도 함께 죽어 주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전보를 쳐 고향에서 연숙의 부모님들을 불러 올 것인가. 부모에 대한 사랑에 이끌리어 죽을 생각을 단념하게 된다는 것은 연극에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경박한 기분에서 자살을 결심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진정으로 죽을 생각이라면 아무리, 어떤 수단으로 방지한다고 하더라도 죽어버릴 것이며 그 정도도 아니라면 내버려 두어도 살아갈 것이다.
“그럼, 마음대로 해. 그렇지만 부디 센치멘탈한 방법만은 택하지 말아 줘, 멋진 자살을 한다는 건 위대한 일이고 그것은 너 정도의 재능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네게 선언해 두고 싶다.”
“여전히 변함이 없는 우정의 충고구나, 자, 이 세상의 석별의 정으로 악수 한 번 하자. 오랜 동안 참으로 고마웠어. 정말로 신세를 너무 졌지……”
소영과 연숙은 눈썹 하나 까딱 하지 않은 채 손을 굳게 잡았다.

소영은 언짢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잠들어 버리는 것은 간단했지만, 가족들이 어젯밤 자기가 집에 없었다고 증언을 해 준다 하더라도 형법상의 효력은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집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딘가에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아야만 했다.
친구들을 찾아 갈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근심 걱정을 모르는 온실 같은 그들을 찾아가 괜한 친구의 험담 따위나 하고 있을 기분의 여유는 없었다.
소영은 자신이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충동적으로 전차에서 내려버렸다. 그녀는 공중전화 박스로 뛰어가자 허둥지둥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기숙사를 연결하여 연숙이를 대 달라고 말하자, 연숙은 약 30분 전에 외출 싸인을 하고 기숙사를 나가고 없다는 대답이었다.
소영은 순간 정신이 아뜩했지만 이제 추적할 방법은 없다. 어느 곳에 예정한 행동을 어떻게 결행하겠다고 그녀도 말하지 않았으며, 소영이 또한 물어 보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지금 연숙을 찾는다는 것은 이미 때 늦은 일이다.
소영은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그 때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한 권 떨어뜨렸던 모양인데, 그녀 자신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보세요! 아가씨……“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며 코앞에 내미는 노트를 보고서야 그녀는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노트를 떨어뜨렸어요.”
제법 잘 생긴 코에 스포츠머리를 한, 키가 컸지만 가슴이 빈약한 사나이가 말했다.
“어머, 감사합니다.”
입으로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상대가 보기에는 의아하게 느낄 정도로 마음의 안정을 잃은 소영이의 태도였었는지,
“무슨 사고가 생겼나요?”
하고 상대는 거듭 질문을 해 왔다.
“아무 일도 아녜요. 좀 무슨 생각에 빠져 있었던가 봐요.”
소영은 자신을 되찾았다.
“걱정거리라도……”
사나이는 소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갔다.
“네, 약간……”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상대는 점점 끈질기게 달라붙어 왔다.
“좋으시다면 어디로 가서 식사라도 함께 드실까요? 그러면서 얘기도 들어보고 했으면 싶은데요.”
“그럼……어쩔 수 없군요.”
소영이가 무심결에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지만 상대는 그것을 자기 멋대로 승낙의 의미로 해석했다.
“그렇군요. 이렇게 해서 알게 되는 것도 무언가 인연일 테니까요. 그럼, 어떻게 할까……아직 식사시간은 좀 이르니까 우선 차라도 한 잔 마시고 나서……식사는 무얼로 드시겠어요? 양식입니까, 한식입니까?”
소영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소영은 무엇이든, 아무 것이든 좋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복종만 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튀김이 좋아요. 보는데서 탁 튀겨 주는 것 있죠?”
“좋긴 하지만……그럼 내가 아는 가게로 가죠.”
사나이는 택시를 잡았다. 내릴 때 그는 운전기사로부터 영수증을 받아서 착실히 수첩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는 ‘흑백합’이라는 고급스러운 술집으로 소영이를 안내했다.
‘하이볼 한 잔 5000원‘이라고 처마 끝에 간판이 매달려 있는 곳과 달라 이곳의 음식은 정가표와 같은 촌스러운 것은 없다. 마담이 맘 내키는 대로 계산을 해 내면 그것이 곧 이 곳의 정가표가 되는 것이다.
취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소영은 속으로 화가 잔뜩 나 있었으므로 괴로운 술을 억지로 마셨다. 연숙과는 곧잘 맥주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녀는 지금쯤 정말 죽으려고 결행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갑자기 마음이 돌변해 어딘가 술집에서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혼자 홀짝홀짝 마시고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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