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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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0>
  • 한지윤
  • 승인 2016.12.22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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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술집에서 나올 때, 사나이는 여종업원에게,
“그럼, 달아 둬.”
하고 말했다. 사나이는 기분이 좋은 것 같아 보였고 마담도 문까지 나와서 친절하게 전송을 했다.
“아저씨, 돈이 많은가 보군요!”
소영은 사나이의 팔에 매어 달리면서 말했다. 그녀는 연숙이를 생각하니 애가 타서 견딜 수가 없었다.
“꼭 그렇진 않지만 먹고 마시는 정도는 불편하진 않아.”
두 사람은 얼마 후 포장마차의 튀김 냄비 앞에 앉았다.
그는 여기도 단골인지 얼굴이 주인과 통했다.
“오늘이 며칠이죠?”
소영이가 물었다.
“9월 20일 수요일. 왜 그래?”
“으응……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서……”
알리바이의 첫 번째 공작은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지금 소영이로서는 전혀 식욕이 돋구어 지지 않는다.
그는 그 포장마차에서도 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 전표 같은 것에 황급히 사인을 해서 내놓는 것이었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먹고 싶지도 않는 튀김을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8시밖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구경 안 할 거예요?”
소영이가 유혹을 했다.
“ ~ 에서  ~가 주연하는 영화를 하고 있어요.
마지막 회 시간에 맞겠는데요.“
“난 그런 배우를 싫어하는 사람인데……”
사나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여자는 좋아하시죠?”
“좋아하지,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여자의 대뇌에는 주름이라곤 하나도 없어 매끈매끈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단 말이야. 백치처럼 머리가 나쁜듯한 그러한 여자가 미치게 좋아.”
“영화구경은 그만 두죠, 그보다도 뭘 좀 더 먹고 싶은데요. 생과자나 단팥죽이라도……”
목구멍까지 튀김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소영은 잠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좋아!“
음식을 잘하는 곳을 안내한다고 했지만 역시 그 근처였다. <한나>라는 집이다.
소영은 그 곳에서 차라리 악마에게라도 잡혀 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해 가며 시원한 단팥죽을 겨우 한 그릇 비웠다. 이제 걱정 따위의 고급스런 정신 작용은 불가능할 정도로 소영이의 위장은 팽만해 있었다.
“아저씨의 명함 한 장 주시죠.”
“그러지.”
사나이는 의젓한 솜씨로 윗저고리의 속주머니에서 K석유주식회사 판매부 김승태라는 명함을 내밀었다.
“전 김소영 이라고 해요.”
“마음이 내키면 또 불러 내지. 그래도 괜찮지?”
그는 갑자기 상냥하게 속삭였다.
“이렇게 하룻밤 놀았다는 것 따윈 곧 잊어버리시겠죠?”
소영은 다짐이라도 하는 듯 되풀이해서 물었다.
“으응……잊지 않아. 절대로.”
사나이가 소영이의 손을 잡으려고 들었으므로 그녀는 테이블 밑으로 손을 넣어 버렸다.
“전 인제 돌아가야겠어요.”
“또 만나.“
두 사람은 카운터 앞까지 나왔다.
“내 앞으로 달아 줘!”
사나이는 또 이렇게 말했다.
“김승태씨 이신가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종업원이 일어나서 어디론가 들어갔다가 곧 되돌아오더니
“김성태 선생님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김성태가 아냐!  K석유의 김승태란 말야.”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여종업원은 급히 또 한 번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서는
“K석유의 김승태씨군요. 회사장부에 달아 두면 되겠죠?”
“그래, 그래……”
김승태는 소영에게 허세를 드러내 보였으므로 기분이 나빴다.
단팥죽 값만 있었더라도 이런 식으로 들통은 나지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니, 소영은 그가 가엾어 보여 한편으론 우울했다.
밖으로 나가자 밤바람은 완연한 가을을 느끼게 했다.
“집에는 자동차도 없고 석유난로도 사용하지 않으며 일체 석유를 사용하는 종류는 사지를 않는데 K석유 선생님에게 이렇게 과분한 대접을 받아서 미안합니다.”
소영은 건성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천만에!”
“앞으로 아저씨 용돈으로 영화를 구경시켜 줄 마음이 생기면 절 불러 주세요.
소영은 얼마 후 네 거리 모퉁이에서 이 천하일품의 노랭이 사나이와 작별을 했다.

그 무렵, 연숙은 동해안의 바다를 향해 가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도화지와 크레파스, 그리고 수면제와 술병이 한 개 들어 있었다.
해안의 등대 불빛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연숙의 등 뒤에서 협박적인 섬광을 퍼붓는다. 문득 연숙은 얼굴을 뒤로 돌렸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감시 받고 있는 듯 느껴졌다. 연숙은 누구의 눈에도 띠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큰 죄라도 범한 범인과 같은 심정이 들었다.
등대의 불빛이 그녀 쪽으로 돌아올 때마다 연숙은 반사적으로 주변 물체의 그늘에 숨겼으므로 발걸음의 속도는 좀체로 빨리 나아가지를 않았다.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았으므로 걸을 힘도 없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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