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2>
상태바
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2>
  • 한지윤
  • 승인 2017.01.05 1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소영이가 특히 좋아하는 곳은 동해에서 가까운, 아버지가 적을 둔 은행에서 5년 전쯤에 지은 비치 하우스였다. 가격도 저렴한 값에 묵을 수 있도록 혜택이 주어져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그 곳에서 뜻밖의 사람과 만나게 되는 일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걸작이었던 것은, 그녀가 아직 여고생이었던 때의 일이다.
바닷가에서 쾌활한 청년과 알게 되어 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그녀는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자, 여고생 신분을 감추고 어느 백화점의 점원이라고 소개를 했는데, 그러자 청년은 싸이클 경주선수라고 자기소개를 했었다.
“백화점 무슨 부서에서 근무하는 거요?”
“지하의 잡화매점. 휴지통이라든가, 빨래집게라든가, 따위를 팔고 있죠. 싸이클 선수라니까……언제 경주가 열리죠?”
“에……이번에는 25일에 전국 시합이 있어요.”
사나이는 수첩을 펴 메모된 스케줄을 보는 체 하면서 말했다.
소영이가 슬쩍 훔쳐보았을 때, 수첩의 페이지에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백지였다. 그러나 그는 운동선수답게 근육이 단단한 육체미를 갖춘 체격이었다.
“시합에 구경 가보고 싶어요. 찾아 갈 테니까 코스 좀 가르쳐 주세요.”
소영은 사나이에게 반하고 있는 체 해보였다.
얼마 후 두 사람은 5백미터쯤 떨어진 바다 가운데에 있는, 콘크리트로 된, 직경 2,3미터 정도의 조그만 섬과 같은 곳까지 시합을 하듯 다투어 헤엄을 쳐 나가다가 물제비장난도 해가며 한 바탕 수영을 한 뒤 해안으로 다시 돌아와 헤어졌다.
다음 날 소영이가 아버지와 산책을 하며 함께 걸어가고 있는데, 저쪽으로부터 하얀 셔츠를 단정히 차려 입은 청년과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청년 쪽에서 먼저 인사를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소영은 그 남자가 어제의 바로 그 청년인 것을 알았다. 그녀는 수영복을 입은 나체의 모습과 옷을 차려 입은 모습과는 눈 착각을 상당히 일으킨다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달았다.
“음, 이태호군 아냐! 언제부터 이 곳에 와 있었지?”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어제 여기에 왔습니다.”
이태호라는 이름의 사나이는 망설임 없이 소영이를 바라보면서 거침없이 말했다.
 “그런가? 이쪽은 내 딸이야. 소영이라고 부르지. 아직 여고생이고……이쪽은 은행에 다니는 태호군이지.”
소영은 묘한 인연이 얽히는구나, 생각했다.
“처음 뵙겠어요.”
소영은 시침을 떼고 초면인 듯 인사 했다. 태호는 아무 말없이 그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자네 그때 자동차 면허는 땄었던가?”
아버지는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아직……아직 멀었습니다. 근무가 끝나고 다니는데 요즘엔 학원에 너무 사람이 많아 제대로 실습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 보다 사실은 아직 전 자전거도 못 타는 형편입니다. 자동차보다 먼저 이 여름 안으로 자전거나 탈 줄 아는 연습이나 부지런히 할 참입니다.”
싸이클 선수라는 어제의 그 사나이는 사실을 실토했고. 소영이 또한 신분이 밝혀져 버린 상황이 아닌가. 서로 거짓말을 했던 이상 어차피 서로 피장파장이 되고 만 셈이었다.
“소영아. 이 청년은 머리도 좋고 진실한 편이라 드물게 보는 좋은 청년이지.”
그와 이내 헤어지고 난 뒤 아버지는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 소영은 비록 여고생이긴 하지만 아버지는 과년한 딸로 생각하고 사위 감을 벌써부터 물색하고 있는 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태호와의 만남은 실패가 아닐 수 없다. 어제 그는 소영에게 ‘아가씨 같은 여자가 내 결혼 상대로서 내가 늘 생각했던 이상형에 속하지’ 하고 말했던 것이다. 비록 장난기일지라도, 그는 줏대가 없는 사나이로 소영이의 가슴에 와 부딪쳤다.
소영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태호에 대한 혐오도 소영이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힌 것도 아니다. 아버지가 가엾다는 생각이 연신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나가 버린 일은 별 도리가 없는 것이라고 소영은 쉽게 생각해 버렸다. 아버지가 말하는 그런 의미에서라면 태호라는 사람은 결코 진실한 인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사람은 어딘가 쉽게 동요되는 사람 같았다. 직장 이외에서 거짓말을 서슴없이 함으로써 자기 나름대로의 해방감 같은 것을 맛보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소영은 그를 나무라거나 미워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조그만 파국이 없는 생활은 또한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며, 그러므로 써 살아가는 진실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는 이후로 소영은 각별히 조심하고 지냈다. 나체 모습의 남자를 대한다는 것은 상대를 알아보는 데에 정확성이 결여되는 지각의 마비라고 생각했고, 그 이후 소영은 나이가 젊은, 아직 취직 연령에 달하지 않은 듯한 남자가 아니면 가능한 상대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난해 여름, 친구인 연숙과 둘이서 이 곳 해변에 와 묵고 있던 무렵이다.
연숙의 수영은 시골 냇물에서 익힌 개헤엄인데 즐겁게 보아 줄 수 있는 폼은 못 되었다.
여고시절 태호와 수영 시합을 했던 콘크리트의 작은 섬까지 함께 헤엄쳐 가고 나니, 연숙과 소영 그들 둘은 모두 지쳐 버렸다.
 “얘, 돌아갈 때는 수영은 그만 두자.”
조그만 인공 섬이긴 하지만 둘이 그 위에서 엎드려 몸을 말리며 일광욕을 하려면 몸을 서로 바싹 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소영은 물속에서 몸을 곧추세워 손발을 놀리며 연숙에게 콘크리트 위로 올라가라고 말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