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삶에 호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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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삶에 호응하라
  • 한학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7.01.2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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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치 있는 일 중의 하나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위해서다.

해가 바뀌면 세상은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데도 색다른 삶을 기대하는 것이 사람 심리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둘러싼 삶은 녹록치 않다. 삶에 길흉화복이 있다 보니 매사 자신을 돌아보며 산다는 게 쉽지 않아서다. 한 해를 무탈하게 보내고 삶에 허기를 채우는 건강한 삶을 위해 넓고 거친 세상을 촘촘하게 들여다볼 일이다.

상대나 상황에 따라 구사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일상대화에 비해 자신과 주고받는 일기는 은밀한 편이다. 그리 보면 일기는 나와 소통할 수 있는 매력적인 창구인 셈이다. 하루는 반복되고 단조로운 속성이 있어 의미 부여를 하지 않으면 가치 없는 나날에 불과하다.

그래서 읽고 쓰고 나를 관조하며 사는 삶이 현대사회에도 언제나 유효하지 않을까. 육필(肉筆)로 종이에 꼬박꼬박 눌러쓰는 일은 이제 특별한 일이다. 그렇다고 내면의 속살을 드러내 보이는 일기 쓰기를 키보드에 두드리는 것은 어쩐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정보기술의 발달이 사람에게 혁신의 이름으로 편의성을 가져다주었지만 기억 저편 창고에서 비밀리에 꺼내 쓰던 사연 다발은 거의 가져가 버렸다. 게다가 현대인의 욕구는 날로 더 진보된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노트 네모 칸 안에 꾹꾹 눌러쓰던 연필의 촉감을 샤프펜슬이 대신할 수 있을까. 교실 창문 밖 멀리까지 긴 여운이 전해지던 풍금소리의 아련함은 피아노 선율에 못지않게 여전히 매혹적이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디지털을 품는 느림의 미학이 신년 벽두 더 정겹게 다가온다.

사랑은 연필로 쓰라는 노래가 있다. “사랑을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라고 하는 가사는 다소 신파적이다. 물론, 그 노래 가사가 다른 의미였을지라도 도리어 디지털시대를 예견한 듯 시대를 앞서 부른 대중가요가 아닐까 한다.

시대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는 흐름을 읽는 게 중요하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는데 아날로그 도구만 고집하는 것은 시대를 좇지 못하는 게으름 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성과 감성의 공존은 사람의 마음을 너그럽고 느긋하게 한다.

현대인의 가슴 속에 녹아있다 재생되는 아름다운 감성은 삶의 완급을 조절해 유연하게 한다. 삶이 혼란스러워도 여유를 갖고 참신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변화의 속도에 의젓해질 수도 있다. 삶이 엮이고 꼬여 헝클어진 실타래 같을지라도 술술 풀어낼 수 있는 지혜는 어딘가 있다.

종이 표면을 긁는 연필심의 마찰음, 호수나 강가에서 둥글고 납작한 돌로 물수제비 뜰 때의 은빛물무늬 포말, 그리고 풍금소리의 선율을 타고 따뜻한 감성으로 세상을 보자. 각기 성격은 달라도 일기가 더러 세상 밖에 나와 타인에게 공감을 주고 읽힌다.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을 피해 은신처에서의 일상 및 희망을 기록한 ‘안네의 일기’와 긴 전투에서 국가의 운명을 지켜낸 장수의 고뇌와 리더십이 녹아있는 ‘난중일기’ 등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인생은 지혜로운 길라잡이와 함께 걸으면 가는 길이 수월하다. 길라잡이를 현대사회에서는 멘토라 한다. 하지만 원초적인 멘토는 내 안에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지향하는 삶, 살아가는 법이나 사랑하는 법은 일기 쓰기로 자신을 곧추 세우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길은 자신에서 문제를 찾고 마음의 창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추구해야할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한다.

그대 밖으로 나갈 마음의 창을 그려라,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심연으로 침잠하라, 그렇게 그 안을 들여다보라, 그 너머 세상에 기다리는 삶의 의미와 조우하게 되리라. 그리고 잠시라도 세상의 번잡함에서 눈과 귀를 쉬게 하라.

당신의 일상을 반추하며 자아를 찾고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멋진 창을 내고 싶지 않은가. ‘노인과 바다’에서 삶에 초연하게 맞서는 산티아고 노인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닮아야할 표상이 아닐까. 내가 매일 나에게 남기는 유산이 일기다.

한학수 <청운대 방송영상학과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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