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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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5>
  • 한지윤
  • 승인 2017.01.26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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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어땠어?”
“역시 네가 말한 그대로였어.”
두 남녀가 덕수궁의 인기척이 없는 호젓한 길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박노진은 연숙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그녀의 두 어깨를 붙들어 잡고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나 연숙씨를 사랑해!”
라고 두어 번 무슨 영화 제목처럼 되뇌었던 것이다.
“내 욕은 하지 않든?”
“했지, 했어. 너 같은 스타일의 여성은 싫증이 난다고 하더라, 얘.”
“그러니? 나한텐 말이다, 널, 그 여자는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시골여자라고 말하더라?”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이것으로 싹뚝 그만 절교해 버려? 이젠 그 녀석 여성편력의 수법도 알았으니까……”

그리고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올해에도 똑같은 무렵, 소영은 연숙을 유혹해 역시 동해안으로 피서를 갔다. 떠나기 바로 전날 두 사람은 아직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내로 나갔다. 아직 무더운 날씨인데도 행인들의 표정에서는 벌써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영은 동해안에서 내일부터 보내게 될 사흘 동안이 갑자기 매우 덧없는 것 같이만 생각되었다.
“진실이라곤 터럭만큼도 없는 녀석이긴 하지만 금속성 같은 사내라도 없다면 바다는 재미없을 것 같다.”
소영은 무심결에 본심에서 나오는 말을  뱉었다.
“금속성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그곳에 꼭 찾아온다고 말했으니까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
소영은 마침 지나치던 제과점 진열창을 들여다보았다.
“그 녀석과 만나질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하트 모양의<케익>한 개를 사 볼까……만나지 못하게 되면 절반으로 나누어서<하트 브레이크 케익>으로 만들어 둘이서 먹지 뭐,
소영이가 제과점으로 들어가 하나 싸 달라고 주문하자 점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고급 제과점이기 때문에 소량의 판매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바닷가는 지난해와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8월 말경에 약한 태풍이 지나가긴 했었지만 그 날의 바다는 단지 울기만 했었다. 소영이와 연숙이가 바라보는 시야의 범위 내에서는 그 금속성다운 남자의 모습은 없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기대의 순간이었으며, 또한 한 순간 한 순간이 실망의 순간이었다.
소영이와 연숙은 그 대신 젊은 미국인 청년 두 사람과 알게 되었다.
바다 속에서 풍선 공을 가지고 놀다 빗나간 공을 잡아 던져 준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죽은깨 투성이의 얼굴인 청년은 죤이라는 이름이었고 코가 빨간 청년의 이름은 쟈니라고 했다. 죤과 쟈니는 수도원 부속학교의 졸업생이라고 했는데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를 가슴에 드리우고 있었으며 그 둘 다 똑똑한 사나이로 보이지 않았다.
“차에 탈까요?”
해가 저물고 네 사람이 수영복을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만났을 때, 죤이 말했다. 자동차는 허름한 포드차였다.
앞자리에 죤과 소영이, 뒷자리에는 쟈니와 연숙이가 앉았다. 죤은 시동은 걸 듯 하면서 엔진의 시동을 걸지 않고 소영이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출발하지 않는 거죠?”
해 저문 해수욕장 근처로 드라이브를 나가려니 생각하고만 있던 소영은 불현 듯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 차를 몰지 않지, 그대로 정거하고 있지, 그렇지, 쟈니?”
“물론이지!”
“나쁜 놈들이야, 당신들!“
연숙은 엉겁결에 내뱉었다. 그 순간 죤의 손이 소영의 어깨로 올라갔다.
“이제부터 우리 신나게 노는 거야. 자, 우선 키스를……”
“연숙아! 도망치자. 지금 말이야……”
소영과 연숙은 잘 훈련된 공수부대 요원처럼 동시에 하나, 둘, 셋을 재빨리 세면서 문을 박차고 튀어 나왔다. 발목이 빠지고 미끄러지는 모래 위를 달려서 이젠 괜찮겠다고 여겨지는 곳까지 이르렀을 때, 소영은 뒤돌아서서 낡아빠진 자동차를 향해 영어로 외쳤다.
“여자하고 노는 시간에 차라리 기도라도 드리는 편이 천국에 갈 일이야!”
그 때 소영과 연숙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한 청년이 유심히 이 쪽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극히 짧은 사이였지만 그녀들과 그 청년은 서로 앞으로 향해 달려갔다. 그는 박노진 이었던 것이다.
“웬 일이야?”
박노진은 연숙이와 소영이를 한꺼번에 껴안으며 말했다.
“이젠 괜찮아.”
“참 잘 만났어, 그렇잖아도 오랫동안 편지가 없기에……오늘 밤엔 클럽에 가서 신나게 춤이나 추자.”
그는 오늘로써 이 바다와는 당분간 이별이라는 것을 이야기 했다.
그는 숙원이 이루어져 월말에는 이탈리아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근처 가까운 클럽으로 들어갔다. 춤을 추고 있는 젊은 남녀들이 웬지 모르게 시즌이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음에 대한 아쉬움인지, 덧없음인지 더욱 세차게 열정을 올리며 몸을 흔들어 대는 것이었다. 그들은 테이블을 잡고 앉아 분위기에 어울려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었다. 이미 그의 가슴과 눈에는 이탈리아의 태양이 뜨겁게 빛나고 있는 듯 해 보였다.
자정이 가까워 서로 서운함을 느끼며 돌아갈 준비로 세 사람이 자리를 떠나려고 했을 때였다. 갑자기 홀의 조명등 불빛이 모두 꺼졌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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