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신발에 빗물이 새어 들어 왔다.
살롱에는 이미 4,50명의 사람이 모여 들었다. 소영이 일행은 입구에서 참가금을 지불하고 맥주의 왕관을 받아 가슴에 달았다.
그것은 참가의 휘장이었다. 테이블에 앉자 주최 측에서 등에다 번호를 달아 주었다. 심사위원은 이 살롱에 자주 오는 화가와 작곡가 각각 한 사람과 최근에 갑자기 유명해지기 시작한 여자 가수 한명과 맥주회사의 대표로 나온 남자 등 합해서 4명이 맡았다.
연숙은 자신의 옷차림에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너덜너덜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그녀는 깨끗한 브라우스 차림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넝마같이 너덜너덜한 비율이 심하면 심할수록 자기의 옷차림이 사치스럽기까지 한 것 이었다. 그 때 마침 사회자의 마이크가 연숙의 옷차림을 보기라도 한 듯 왕왕거리기 시작했다.
“알려드립니다. 더러워지거나 찢겨지거나 해서 신경이 쓰이는 곤란한 복장을 하고 계시는 분은 지금 퇴장해 주십시오. 그 옷에 대한 책임은 일체 이 살롱에서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연숙이는 무엇보다 소영이의 수행원이다. 아니 소영이라는 스타에게 고용되어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으므로 그녀는 물론 퇴장할 생각은 없었다.
이윽고 심사위원 4사람이 도착했고 동시에 살롱의 홀이 무너져 내릴 듯한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아, 이 순간 고뇌의 삶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미국의 노래건, 유럽의 노래건, 동남아의 여러 나라 노래이건, 젊은 세대들의 노래는 한 사람이 노래하면 곧이어 합창으로 이어져 2부로 되고 3부로 되고, 그리고 4부로 되어 무한대로 부르고 또 불리워지지 않는가.
음악은 템포 빠른 베토벤의 <에로이카>로 변하고 있었다. 홀 안은 금방 맥주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부라보의 외침이 실내를 뜨겁게 만들어 놓았다. 저만치 비어 있는 무대에 오색찬란한 불빛이 번갈아 별이 쏟아지듯 번쩍이고 있다.
한 남자가 이웃 테이블의 여자의 손을 잡는다. 그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은 다음 테이블의 남자와 손을 짝지어 주듯이 눈짓을 한다.
그리고 테이블에서 저 테이블로 서로 연결이 되고 이윽고 무대로 쏟아져 나와 원형의 무리는 춤 바다가 된다. 어깨와 어깨가 부딪치고 노래 소리가 실내에 가득 찼다.
‘산타루치아’ 의 3박자 달콤한 선율이 끝나자 음악은 완전히 바뀌어 지고 폭죽이 세 차례나 낮은 천정을 뚫고 나갈 듯이 솟구쳐 올랐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함성이 떠올랐고 사랑과 평화에 대한 뜨거운 염원 그리고 청춘, 음악, 춤 칵테일 같은 생명감이 충만했다.
도중에 휴식을 취하고 나서 조용한 경음악이 흐르면서 2부가 시작되었다. 연숙은 소영이에게 우승의 가능성이 있는지 어떤지 걱정이 되어 두리번거렸고 점차 마음의 여유를 잃어 갔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우승이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되지 않았다.
‘클레멘타인’이 흘러나오자 실내의 모든 사람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과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댄스를 할 줄 알거나 모르거나 모두들 춤을 춰야했고 비록 춤을 어떻게 춰야할지 몰라도 그 순간 그것은 아무런 부끄러움이 되지 않았다.
‘검은 눈동자’로 음악이 바뀌고 남녀들은 어깨를 얼싸안고 손을 서로서로 붙잡았다. 그들은 문득 남자와 여자라는 이성을 떠나서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따스함으로 서로 연결되는 듯했다. 이 상호신뢰의 감정이 절정에 오를 무렵, 연숙은 한 순간 이 지구상에 개인과 개인, 나라와 나라의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될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녀는 웬지 크게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그 때 누군가 사방에서 맥주를 흩날렸다. ‘야!’ 하는 함성과 함께 누군가가 상대방의 옷소매를 쿡 잡아 당겼다. ‘찌익’ 하고 옷이 찢겨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일순간 실내는 옷 찢어지는 소리와 함성으로 수라장이 되었는데. 누더기는 날아 흩어지고 온 몸이 누더기로 너덜너덜해 나체에 가까워진 남자도 튀어 나왔다. 연숙이도 몇 번인가 브라우스를 붙잡혀 당겨지는 바람에 어깨 부분이 10센티 정도나 크게 찢어졌다.
한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사회자의 방송이 있었다.
“에, 여러분! 이제 곧 심사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심사위원은 이 흥분의 무리 밖에 앉아서 100여명의 사람이 누더기가 된 모습을 일일이 삼사하고 있었다.
실내는 다소 조용해졌고 마이크 소리가 이어 울려 나왔다.
“네, 그럼, 집계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오늘의 그랑프리는 등번호 47. 47번입니다. 47번!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총채의 너덜너덜한 자락을 치렁치렁하게 앞머리에 드리우고 여기저기 찢어 발기워진 이브닝드레스, 왼쪽 옷소매가 어깨부터 한 가닥으로 질질 2미터 이상이나 길다랗게 찢어져 매달린 채 끌리는 꼬락서니로 나타난 소영이, 그녀는 사람들의 갈채를 받으면서 심사위원들 앞으로 망나니처럼 달려 나갔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뼈다귀 같은 꽃다발을 흩어서 사람에게 여기저기 뿌리듯 던졌다. 그리고 손바닥에 키스를 해서 사람들에게 내던지는 시늉을 하며 승리의 감사 표시를 했다. 그것은 마치 외국의 무슨 진짜 콘테스트 같았다. 우레와 같은 박수의 순간에 번쩍하고 카메라의 플래쉬가 터졌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소영이는 늦잠을 실컷 잤다. 점심때가 다 되어 일어난 뒤 한가로이 창가의 등의자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아버지의 곁에서 소영이도 역시 한가로이 손발톱을 깎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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