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사자 유해 묻힌 곳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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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사자 유해 묻힌 곳 찾다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7.02.2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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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경찰, 6·25 전쟁 전사 부친 유해 찾아주는데 앞장80세 고령 아들, ‘이 나이에 마지막 소원 이뤄 감사’

6·25 전쟁에서 전사한 부친의 유해를 찾는 A씨가 홍성경찰서의 도움으로 평생의 소원을 풀게 됐다. 홍성경찰서(서장 양윤교)가 6·25전쟁에서 전사한 부친이 전투를 치른 장소와 유해가 묻힌 장소를 수소문하는 아들 A씨(80)에게 아버지의 유해가 묻힌 곳을 찾아줘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홍성경찰서 경찰관으로 재직했던 A씨의 아버지는 지난 1950년 7월, 북한군이 남하하면서 임신 중인 아내, 그리고 어린 A씨와 함께 충남 서천, 장항 인근까지 피난을 떠나게 됐다. 피난 중 남편과 갑작스레 소식이 끊긴 어머니와 A씨는 홍성군 구항면으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A씨의 어머니는 이후 경찰서를 통해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고, 당시 10살이었던 A씨는 동생을 임신한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꾸려가느라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한 채 세월이 흐르게 됐다.

성인이 된 A씨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기 위해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과 ‘전사자 유가족 DNA 시료 채취’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해 찾기에 나섰으나,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80세가 될 때까지 국립묘지 내에 비어있는 아버지의 묘소에서 그리움을 달래던 A씨는 ‘혹시 아버지의 기록이 홍성경찰서에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홍성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홍성경찰서 경무계 직원들은 서고에 보관된 ‘순직경찰관대장’에서 A씨 아버지의 이름을 확인했으나 ‘전북 이리(현재의 익산)에서 전사’라는 기록만 남아있을 뿐, 전투지와 사망 장소는 기록돼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호국충남경찰사’ 기록물에서 홍성경찰의 전투 장소 등에 대한 기록을 찾아냈다.

해당 기록에는 ‘당시(1950년) 후퇴한 홍성경찰은 7월 19일 23시부터 북한군 1000명과 조우했다. 우세한 적의 화력이 집중되는 가운데 충남경찰대원들은 5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며 적 30명을 사살했으나, 북한군 기계화 부대가 투입되며 특경대를 포위하려 하자 적진으로 돌격을 감행, 혈전 6시간 만인 7월 20일 5시에 충남경찰 59명의 대원은 황등 산야를 피로 물들이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익산 다송초등학교 부근 황등전투)’고 기록돼 있었다.

홍성경찰서 직원들은 익산경찰서 경우회장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고 당시 전투와 관련된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홍성경찰은 A씨에게 관련 내용과 익산경찰서 경우회장의 연락처를 전달했고, 지난달 5일 A씨는 익산을 찾아가 당시 경찰관들의 유해를 수습한 지역주민을 만나 부친이 전사한 장소와 유해가 묻힌 장소를 알게 됐다. 80세 고령의 나이에 부친께 술 한 잔 올리며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을 풀게 된 A씨는 홍성경찰서 직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찾아가겠다고 연락했으나, 홍성경찰서 김희환 경무계장은 “경찰관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A씨의 방문을 정중히 사양했다.

김 계장은 “6·25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홍성경찰서 선배님과 아드님이 70년 만에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경찰관으로써 기쁘고 보람이 크다”는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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